平成(헤이세이)의 마지막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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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특임교수

한국도 일본도 재난급 폭염에 휩싸인 여름이 드디어 끝나려고 하고 있다. 여름은 일본에서는 기도의 계절이기도 하다. 8월 6일에는 히로시마, 9일에는 나가사키에서 원폭희생자 위령을 위한 기념식전이 열린다. 한국에서는 광복절 축하 분위기로 가득 찬 15일은 일본에서는 ‘종전’의 날로 ‘전국전몰자추도식’이 천황이나 총리가 참석하는 가운데 열린다.

참담한 전쟁의 기억을 새기는 15일 추도식에서 아베 총리는 올해도 침략 전쟁이나 식민지 지배의 가해 책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1993년 호소카와 총리를 시작으로 역대 일본 총리들은 15일 열리는 추도식에서 가해 책임을 언급하면서 ‘깊은 반성’이나 ‘애도의 뜻’을 밝혀왔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2013년 두 번째로 총리에 취임하고 6년 동안 한 번도 가해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편 천황은 “전후 오랜 세월에 걸친 평화로운 세월을 되새기면서”라는 표현을 새롭게 덧붙여 과거의 잘못에 대한 ‘깊은 반성’을 재차 표명했다.

지난해 8월 천황은 생전퇴위의 뜻을 품은 메시지를 일본 국민 앞에 밝혔다. 이를 받아들여 퇴위를 위한 특례법이 지난 6월에 제정되면서 내년 4월이면 현 천황은 퇴위해서 그 자리를 황태자가 이어받게 된다. 1989년 히로히토 전 천황이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된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끝나 내년부터는 새로운 연호(年)가 일본인들의 시간을 새기게 된다.

천황의 퇴위는 에도(江戶) 후기에 119대 고카쿠(光格) 천황(1771∼1840)이래 약 200년 만이라고 한다. 일본 패전 직후의 연합국점령기에 전범 책임을 맥아더에 의해 면책 받은 히로히토 전 천황은 퇴위조차 하지 않고 전후 병사할 때까지 그 지위에 머물렀다.

이렇듯 생전퇴위의 결단이란 역사적으로 보아도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며, 거기에는 아베 정권으로 상징되는 역사수정주의의 태동, 바꿔 말하면 ‘전후 민주주의의 파괴·공동화에 대한 위기감 (시라이 사토시白井聰 『論 菊と星旗』)’이 반영돼 있다고 한다.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 천황제가 아시아 침략의 온상으로 패전과 더불어 폐지됐어야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패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틀 안에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천황제는 명맥을 유지했다.

현 천황은 새 헌법에 새겨진 천황의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넓게 이해하고, 전후 민주주의나 평화주의의 상징으로서 국내외 전쟁 유적지나 재해지 순방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런 천황이 ‘상징’으로서의 공무를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수행하지 못하게 된 이상 퇴위는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하지만 생전퇴위를 둘러싸고 수면 하에서는 천황이란 단지 존재만 하면 되고 그 공무는 전범예의(典範儀)에 국한시켜야 한다는 우파 어용학자들과의 갈등까지 빚었다고 한다.

침략전쟁의 반성도 없이 자위대의 해외파병에 길을 열고 헌법 개악까지 시도하는 아베 정권은 천황이 수호해 온 평화주의와 어긋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현 천황이 천황으로서 최후의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굳이 “전후의 오랜 세월에 걸친 평화로운 세월을 되새기면서”라는 구절을 더한 것도 아베에 대한 경종으로도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이는 일본의 전후 평화주의가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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