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료
원고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원고를 집필한 후에 받는 보수가 원고료다. 줄여서 고료라고도 하는데, 간행물에 게재된 후에 지불되는 게 통례다.

실제는 일정치 않아, 집필자의 권위나 인기 또는 원고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매당 얼마로 셈하나, 영어문화권에서는 단어(one word)당 얼마로 계산하는 식이 대부분이다. 매 건 1만 원 이하일 때는 과세하지 않으나, 그 이상일 때는 원칙적으로 지급하는 자가 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인세(印稅)와 혼동할 수 있으나 엄연히 다르다. 인세는 저작권 사용료의 한 형태로, 주로 서적 출판의 경우 출판사 측에서 저작권자에게 저작물 이용의 대가로 지급하는 금전적 반대급부다. 책값의 10%다. 쉽게 말해, 원고료는 글을 써 주고 난 후에 받는 것인데, 인세는 책이 팔리면서 저자에게 지급하는 수수료에 해당된다.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로 원고료를 받은 작가는 금동(琴童) 김동인이라 한다. 1920년대 잡지사 <개벽>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당시 원고료는 200자 한 장에 50전이었다. 그는 원래 원고료를 받지 않고 작품을 썼다는데, 문단 상황에다 개인적으로도 사정이 열악해 부득이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많지는 않지만 원고료 수입에 의존해 살아가는 전업 작가들도 있다. 거기에도 등급이 매겨져 있어 내막을 속속들이 짚어 내기는 쉽지 않다. 신문 잡지 등에 소설을 장기간 연재하지 않고선 경제적 결핍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드라마 작가 중에 시청률을 끌고 다니는 이는 원고료 수입이 많아 삶도 윤택할 것으로 미뤄 짐작할 뿐이다. 그 쪽에도 번역 각색 등으로 세분돼 있어 차등이 있을 것이다.

등단하면서 멋모르고 원고료에 대한 환상을 쫓던 때가 있었다. 사반세기 전, 그때는 등단작가가 몇 안되던 때라 작가란 타이틀만 가지면 여기저기 글을 내게 될 테고 그러면 원고료 수입도 짭짤하려니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뜬구름을 잡는 한낱 허황된 꿈이었을 뿐이다.

제 분수도 모르고 우쭐댄 허망한 자아도취였던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자신의 문장을 모른 채 또 제 작품수준에 대한 충분한 가늠도 없이 넘보다니. 신기루가 사라진 하늘가엔 흐르던 구름 몇 조각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더욱이 문단에 진을 치고 있는 기라성 같은 작가군. 얼마나 겹겹이고 탄탄한가. 섬에서 목선 타고 노 저어 뭍에 닿으려는 꿈은 좋으나, 그건 아무나 성취하는 게 아니다.

무명인 나는 지금, 원고료를 받는 게 별반 없다. 몇 군데서 통장에 입금되지만 별다른 관심이 없다. 쓰는 게 즐거워 쓰고 있을 따름이다.

해프닝이 있었다. 구좌의 여류수필가 K. 그가 수필집 『탯줄의 연』을 낸다고 작품해설을 부탁하므로 A4 10장에 상당한 분량의 원고를 써 넘긴 뒤, 최종교정도 거들었다. 책이 나오자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K가 원고료로 50만 원을 입금했다는 것이다. 의중은 알겠으나 정중히 사양했다. 저자에게 도로 입금시켜 달라고 했다. 바로 K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 그러시다면 식사라도….” 그것마저 일언지하에 사양했다. “문단에 내가 내보냈잖아요? 그 인연으로 글 몇 줄 쓴 걸 갖고 뭘, 신경 쓰지 말아요. 이심전심인데.”

K가 내게 건넨 책의 간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생님은 저의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가슴 뭉클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