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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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무력감 때문인가. 도대체 어디서 발원하는가. 원인을 발 놓고 선, 사회로 현실로 돌리기 일쑤다. 딛고 선 대지가 탄탄하지 못하다 한다. 눈앞의 현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지탄한다.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이도 많다. 하지만 잔뜩 쌓인 그 불화의 요인들을 풀어낼 마뜩한 해법을 찾지 못한다. 불평·불만의 표면적만 넓힐 뿐 이렇다 할 소득이 없다.

요즘 젊은이들 쉽게 포기하려 든다. 소위 N 가지 이상을 포기하는 세대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면 3포, 집·인간관계를 포기하면 5포, 거기다 꿈과 희망을 포기하면 7포라 말한다. 이것들은 삶의 핵심으로 어느 하나도 버릴 것이 아니다. 그걸 버리겠단다. 쉽게 말한다. 기러기가 털을 버리듯이 그렇게. 희한한 신조어다. 조어의 발상 자체를 떠나 사회와의 화평을 이루지 못한 데서 나왔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현실 속에서 모멸과 수치를 겪으면서 아득바득 살아가려 하지만 사람대접 못 받고 눈칫밥이나 얻어먹으며 남루처럼 너덜거리니 이게 어디 사람의 삶이냐, 젊은이들의 볼멘 토정이 슬프다. 돈이 없어서만도 아니다. 이 시대를 견인할 지침이 돼야 할 철학이 없다. 길이 없다. 철학과 길이 없으니 꼼짝없이 낭인으로 흘러 다니는 신세다. 길을 잃고 멈춰 버린 것이다. 그들은 목마르다. 삶에 목마르고 사고에, 꿈과 희망에 목마르다. 그리고 마음은 어둡고 무겁다. 슬픈 시대의 슬픈 서사(敍事)다.

돈 있는 자에게만 헐거운 법망(法網)이다. 법은 방망이나 두드리는 게 아니다. 선언하고 돌아앉아 버린다고 끝나지 않는다. 몇 십 억이면 보석으로 풀려나온다. 없는 자만 죄인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모순, 당착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대중의 눈이 살촉같이 꽂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 악순환은 이제 안된다. 기웃거리다 법리 해석이 영장기각으로 흐른다. 바라보는 서민의 분노가 한없이 슬픈 오늘.

하늘을 난다고 땅 위라 함부로 횡행하는가. 항공사 일가의 갑질은 도를 넘어 행패다. 까딱 않고 명심해 다뤄야 할 유리컵을 냅다 집어던진다. 하수인이라고 노예로 대한다. 아직도 깨지 못한 몽매로 그만한 분별도 차리지 못한다. 당달봉사만도 못한 그들 눈이 하 슬프다.

회장님 납신다고, 다가가 품에 안기라니. 이 땅에도 기쁨조가 엄존한다니, 실로 개탄스럽다. 그걸 당연시하는 우월의식을 뿌리째 뽑아 내지 않는 한 눈치보다 슬그머니 돋아나는, 그들은 이 나라의 독버섯이다.

짐 되면 죽는 게 낫고, 돈 없고 서럽고 쓸모없으면 죽는 게 낫고, 공부 못하고 밥이나 축내 벌레 취급당하면 죽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제일 슬프다. 그랬구나.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에 수긍해 고개 끄덕이며 슬프다. 나보다 더 없고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많은 세상이 슬프다.

저출산으로 나라의 미래가 불안정·불투명하다. 인구 급감은 국력의 쇠퇴로 이어진다. 그것 참 속상한 노릇이다. 어쨌든지 아이 없는 가정을 상상하지 못한다. 아들이 제 어머니에게 묻는다. “아버지 선생 봉급으로 어떻게 우리를 키우고 학교 보냅디까?” “응, 너희들이 있어 어찌어찌 살아져라.” 쉬이 자신을 버리려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슬프다.

슬픔은 때로 비열하다. 절망의 강을 건너 저 피안의 언덕을 바라보며 오늘을 견뎌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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