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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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식 수필가

여름철이면 하우스에서는 잡초와 전쟁이 시작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동네할머니가 알아서 김을 매어주었는데,

올해는 할머니 건강이 시원치 않아서 김매는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천혜향하우스에 김매는 일 때문에 걱정을 하는데, 친구가 폐계를 사다가 2천 평의 하우스에서 방목을 하니 잡초는 구경도 못 하겠다며 한번 시도해보라고 권한다.

아내도 김매는 일이 너무 버거우니 닭이라도 한 번 키워봤으면 해서 우선 동네에 개를 키우는 집에 찾아다니면서 방견을 하지 말도록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족제비와 고양이들도 있어서 안심을 못 하겠다.

친구가 우선 폐계 12마리를 빌려주겠다고 하나 남의 닭을 가져다가 잘못되면 어쩌나 한참 고민을 하다가 닭을 빌려오기로 결정을 하였다.

처음에는 환경이 달라지니 시집온 새색시처럼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아무것도 잘 먹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니 하우스 안에 민달팽이가 그렇게 많았는데, 보이는 대로 먹이사냥을 한다.

사료를 주면 일을 게을리 한다며 사료를 주지 말라고 하나, 사람도 배가 고프면 일을 못하듯이 동물도 마찬가지라 생각하여 닭 사료를 사다가 아침마다 넉넉하게 주었다. 처음에 닭을 가져올 때는 목과 앞가슴에 털이 다 빠져서 피부가 훤히 들려다 보여 흉측했으나, 한 달쯤 지나가자 새털이 나오고 살이 찌면서 암탉이 모양새가 되어갔다.

아침에 주유소 문을 열고 직원이 출근과 동시에 나는 닭 사료를 들고 우영팟 하우스로 간다. 닭들은 하우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보면 먹이를 빨리 달라고 난리 부루스이다. 간밤에도 무사했는지 무언의 인사를 나누며 우선 마리 수를 세어본다. 사료는 풀이 많은 곳으로 가서 풀 위에 뿌려주면, 사료를 먹으며 발로 땅을 긁으니 파랗던 잡초는 어느 새 초토화가 되어버린다.

두 달쯤 지나자 몇 마리가 알을 낳기 시작했다. 너무나 신기해서 오늘은 계란을 몇 개나 낳았는지. 주말이면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이 와서 자고 가는데 계란을 모아 두었다가 삶아서 먹기도 하고 손자에게 반찬을 해 주라며 며느리에게 주기도 했다. 계란 노른자를 보면 시장에서 사온 것 보다 훨씬 색깔이 진하고 좋아 보였다. 친구들에게 우리 농장에서 낳은 자연산이라며 자랑도 했다. 그런데 누가 와서 계란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닌가. 폐계가 낳은 계란은 좋지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식약청에 근무하는 딸에게 전화해서 전문가에게 문의해 보라고 했더니 며칠 후 연락이 왔다.

폐계가 낳은 계란도 닭도 좋지 않다고 해서 가슴이 뜨끔했다. 이유인즉 하우스에서 방목하는 닭에서도 농약성분이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계란을 먹지 않고 있지만,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는 닭들도 한 마리도 계란을 낳지 않았다. 며느리와 손자에게는 죄를 지은 것 같아 얼마나 미안한지.

어느 날 갑자기 닭 주인이 닭을 가져가야겠다는 연락이 왔다. 친척집 하우스에도 풀이 많아서 빌려달라고 하니 거기서 잡초가 다 처리되면 다시 우리 하우스로 가져오라는 것이다. 참 난감한 일이였다. ‘~ 이제 막 제대로 일을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양계장에서 폐계를 그 마리 수만큼 사다가 주기로 하고,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여 양계장에서 폐계를 매입하여 갖다 주려고 전화를 했더니, 가져오지 말라는 것이 아닌가. 자기네 옆집에 하우스에도 폐계를 키웠는데, 간밤에 족제비의 습격을 받아서 모두 몰살을 당해서 겁이 나서 키우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 다시 닭을 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그냥 키우라는 것이다. 졸지에 12마리에서 24마리가 되었다. 어쩌랴 그냥 알았다 하고 다시 사료도 열심히 주며 잘 키우고 있다.

천 평의 하우스에 12마리가 있을 때는 풀이 조금 여유가 있더니만, 갑자기24마리로 개체수가 증가하니 생존경쟁이 치열하여 먹이 때문에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사료도 갑절을 더 많이 주고 있으나, 항상 배가 고픈지 사람만 하우스에 들어가면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닌다.

농촌에서는 요즘 하우스에 김매기가 힘들어지자 제초작업을 하는데 폐계를 일꾼으로 이용하고 있는 농장이 많아지고 있다. 몇 달 전만해고 하우스 안에 잡초가 엄청 많이 자라고 있었는데 요즘은 파란 풀은 구경도 못하겠다. 24마리의 일꾼들이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올해 하우스에 잡초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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