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木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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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굳게 다문 입, 동요하지 않는 눈빛은 간사한 세상인심에 대처할 수 있는 비장의 승부수다. 절제된 표정은 평정심에서 나온다. 평정은 무심이요 무정이다.

장자는 눈앞의 어떤 상황 변화에도 흔들림 없는 무심(無心)에서 남과 다투는 승부를 넘어선 경지를 목계(木鷄)에 빗댔다. 목계란 나무로 조각한 닭이다. 이런 정신세계를 달마선사는 ‘심여목석(心如木石), 마음이 마치 목석과 같다.’ 했고, 혜능선사는 ‘무정부동(無情不動), 감정이 없는 것같이 동요되지 않는다.’ 했다. 무정은 무심이다.

목계는 《장자》의 〈달생편(達生篇)〉에 나오는 싸움닭에 관한 우화에서 유래했다. 닭싸움을 좋아하는 중국 기(紀)나라 왕이 투계 사육사 기성자란 이에게 최고의 투계를 만들어 달라 명했다.

훈련을 시작한 후 열흘쯤 지나서 왕이 “이제 됐는가?”라고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기는 하나 교만해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 후 다시 열흘이 지나자 왕이 도로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지만 상대방의 소리나 그림자 하나에도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 태산같이 움직이지 않는 무게가 있어야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되묻자, 그가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이라 최고의 투계는 아닙니다.” 마흔 날에 이르러 또 물으니, 그가 답하기를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상대방 닭이 아무리 소리치며 도전해도 움직이지 않아 마치 나무로 조각한 목계처럼 됐습니다. 이젠 완전히 마음의 평정(平定)을 찾았습니다. 그런즉 어떤 닭도 모습만 보면 한걸음에 도망칠 것입니다.”

극도로 잘 훈련된 정신세계와 그 위엄이, 마치 목계처럼 흠 없는 천하무적의 싸움닭이 됐음을 빗댔다. 우화를 화소로,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요지부동의 정신과, 함부로 범접 못할 태산 같은 위의를 갖춘 인물을 목계에 비유한 것이다. 이 얘기 속에서 목계는 평정과 무외(無畏)와 자유를 상징한다. 외부의 자극에 동요되지 않고, 어떤 위협에도 두려움이 없으며, 어떤 속박에도 매이지 않는다 함이다.

동네 어귀로 들어서면 가까이에서 누렁이가 짖어댄다. 요란스럽다.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커 간다. 겁이 나니 짖는 것이다. 덩치 큰 맹견이면 절대 요란 떨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에 짖으며 공격할 게 아닌가.

생태계에서도 맹수들은 표정이 험상궂은데다 조용해 무섭다. 원숭이는 쉴 새 없이 들락거리며 소란을 피운다. 하지만 백수의 제왕 호랑이는 태연작약하고 위풍스러움을 놓치지 않는다. 위세만으로도 숨을 멎게 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주책없이 나달대는 새는 힘없는 것들이다. 맹금류인 매나 독수리는 앉아 있을 때 미동도 않는다. 지배자의 위용으로 목계의 다른 얼굴이다. 정글과 하늘을 거머쥔 포식자는 자체로 평정이요 무외요 자유다.

소소한 일에 쉬이 반응하는 이는 강자가 아니다. 자극에 민감한 약자다. 강한 자는 태연함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평정을 얻어 평상을 유지할 수 있으니 가능한 것이다.

평정과 평상은 낮은 자세로, 작은 보폭으로 사는 자의 덕목이다. 요즘 사회가 셀 수 없는 많은 자극 속에 그때마다 기준 없이 무너지는 게 안타깝다. 평정심이 없으니 그런다. 목계를 닮으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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