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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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심 수필가

가랑비가 내린다.

가을장마라 할 만큼 비가 잦다. 쉬이 물러설 것 같지 않던 기록적인 무더위도 어느새 저만큼 물러가고 또 다른 계절이 오고 있다.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반갑다. 부쩍 사람들의 들고 남에도 활기가 돋고 여름내 지쳤던 얼굴들에는 화색이 짙어지는 듯하다. 때맞추어 내리는 비에 세상은 촉촉이 생기가 돈다.

 

시장은 늘 북적인다. 무슨 보물을 찾아내려는 듯 사람들은 제각각 호기심 가득하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살 물건에, 물건을 파는 사람은 사려는 사람의 마음에, 서로 관심은 다르지만 바쁘게 움직인다.

오랜만에 재래시장에 들렀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시장 풍경은 여전했다. 곱게 다듬어 흰빛이 싱싱한 쪽파 몇 단, 갓 벗겨놓은 고구마 줄기, 호박잎, 까만 거 빨간 거 돔비 한 홉씩. 인도에 벌여놓은 좌판의 모습도 눈에 익숙한 것들이다. 이십여 년 전 시장을 오갈 때 저 자리에 앉아 있던 그 이들은 아닐 텐데 모든 풍경은 변함이 없다.

고마와이, 이것도 하나 더 사가아!”

잔돈을 내주며 내가 낸 돈에 살짝 침을 묻히고 머리를 쓸어올리는 마수걸이 하는 할머니의 모습도 그대로다. 세상은 많이 변하는 듯해도 정작 우리 삶은 그다지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예전에 단골로 다니던 가게를 지나칠 때는 주인과 눈이 마주쳐 눈인사를 나누었다. 주인이 바뀌었는지 낯익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가게에는 은근 전주인의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눈을 감아도 선한 시장 곳곳의 가게들. 생선가게, 과일가게, 정육점, 참기름을 짜는 고소한 집, 다양한 이름이 앞에 붙은 각종의 상회들. 제사나 집안 대소사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려면 이곳들을 죽 거쳐야 마련이 되었다. 일 년에 예닐곱 번 제사와 명절을 올리다 보니 시장 구석구석을 다 꿰고 다녀야 했다.

 

?.”

몇 년 만에 들른 분식집 여자가 눈을 크게 뜬다. 긴가민가하다 금방 알아보고 말을 붙인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늘 시장에 데리고 다녔다. 시장만큼 세상 구경하기 알맞은 곳이 또 있을까 싶어 번잡한 장터지만 함께 했다. 그리 아이들과 시장 안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으레 들리는 곳이 이 집이었다. 쪼르르 셋이 앉아 국수 그릇에 매달려 젓가락 놀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아이들.

국수 한 그릇 주문했다가 김밥 한 줄을 더 보태었다.

이제 보니 주인 여자도 나와 비슷한 나이인 듯했다. 몸도 아프고 지쳐서 딸에게 물려주고 가끔 도와주러 온다며 씨익 웃는다. 세월이 흘러서, 이렇게 마주치는 이들의 삶이 각별해지고 애틋함이 인다.

 

밤새 세간살이의 번뇌로 뒤척이다가도 이리 사람들 속을 휘휘 돌고 나면 후련해진다. 한참이 지났어도 기억하고 웃어주는 그 순연함. 마주하고 눈을 맞추는 순간 반짝 빛나는 그 본디의 선함. 이곳 시장 하늘에도 따뜻한 구름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건네주고 건네받고, 그 안에 면면히 이어지는 호흡과 체온, 그리고 웃음.

우주에 꽃이 피어나는 이유가 아닐까. 이 우주를 영원하게 하는 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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