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말하는 정치가의 말과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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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정, 일본 치바대학교 준교수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과 유엔에서 한 연설은 우리 국민은 물론이고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평양의 능라도 5·1경기장 연설은 남북의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연설문에는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대한 염원이 잘 담겨있었다. 특히나 대통령이 북한 땅을 직접 보고 느낀 점이 잘 담겨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더더욱 절실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일본의 아베 총리의 연설 또한 일본에서 사람들의 입에 종종 오르내린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평화와 비핵화의 상징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원폭희생자 추도식 인사말이다. 아베 총리는 해마다 거의 같은 내용의 인사말을 읽어 내려간다. 심지어 2014년 히로시마 추도식 인사말은 그 전 해의 내용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거의 같은 내용의 연설을 해 국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또한 올해 추도식에서는 핵 없는 세계를 외치면서도 정작 핵무기 금지조약에 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이는 말과 행동이 모순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원폭희생자의 상처와 비핵화에 대한 염원을 외면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한 국어학자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서 추도문을 읽을 때만큼은 그의 인사가 진정성이 없고 형식적이어서 반대로 안심이 될 때도 있다는 뼈있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정치가들의 일본어를 연구한 즈즈키 츠토무 교수는 아베 총리가 국외에서 하는 답변은 더더욱 진정성이 없고 가벼워보이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설명과 설득보다는 자신의 정당성을 강한 말투로 주장하며 이를 위해 과도하게 강조하거나 단정적인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단단히’, ‘반드시’, ‘한번도’, ‘틀림없이’ 등 뜻을 강조하는 표현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아베 총리의 말투를 좋아하고 위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

한편 한 나라 리더가 하는 말의 중요함은 국가적 위기나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더더욱 드러난다. 일본의 사회언어학자 아즈마 쇼지 교수는 9·11 테러와 3·11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경험한 미국과 일본의 지도자가 위기 발생 시 국민을 상대로 각각 어떠한 연설을 했는지 분석했다. 그 분석에 따르면 당시 총리였던 간 나오토 총리는 국민과의 공감대 형성을 먼저하기보다 자신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알리는 정보전달 중심의 ‘리포트 토크(report talk)’를 했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국민과의 연대와 정서를 중시하는 ‘라포트 토크(rapport talk)’를 했다. 그러나 두 토크 모두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을 안심시키기에는 부족했다. 정보 전달만 강조하는 경우에는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정서만을 강조하는 경우에는 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을 제시하기 어렵다. 리더라면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와 정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담아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 리더의 연설은 아쉬운 면이 있다.

정치가의 말은 그 자체가 약속이고 선언이며 정치적 행동을 뜻한다. 이는 단순히 지도자의 말이 무거워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내용과 깊이가 무엇으로 채워져야 할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세계의 평화와 비핵화에 대한 새로운 역사가 논의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지도자의 평화를 향한 진정성 있는 메시지가 더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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