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사흘 ⑸
오사카에서 사흘 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오사카에 흔적 하나 찍는다고 찾은 곳이 오사카성이다. 택시에서 내리자 오후의 열기에 숨이 턱 막힌다. 덥다. 누구는 여름에 다녀오며 ‘평화로운 오사카성의 오후’라 했지만, 원체 천성이 낭만적인 사람일 테다.

내겐 선입견도 만만찮게 거들었다.

오사카성은 일본 전국시대의 흥망영고의 세월을 깊이 품어 온 유적지 아닌가. 최고 권력자가 머물던 곳, 성벽에서부터 위압감이 느껴진다.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 통일을 이뤄낸 뒤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16만 명 일꾼을 동원해 축조한 성이다. 1583년부터 쌓기 시작했다는데, 석축 당시 금박 장식으로 뒤덮인 호화판이었다 한다. 이후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면서, 지금 건물은 1931년 콘크리트로 복원한 것으로 병풍에 그려 있는 그림을 참작했다고 전한다.

당초 대외 침략정책을 꿈꾸며 구상했을 것이고, 끝내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난공불락의 요새’라 함이 그냥 붙여진 이름이겠는가. 오사카의 랜드 마크라지만, 이미 시선이 과거에 고정되면서, 내 눈엔 침략자의 야욕을 채우려 한 야망의 진원지로밖에 오지 않는다.

예쁘다, 단아하다, 일본 제일의 성이다, 오사카 여행의 백미다, 갖은 수사에 현혹돼서가 아니다. 다시는 못 올 것 같으니 발을 놓자 한 것뿐이다. 몇 년 전 서부유럽에 갔을 때와 달리 가족이 호흡을 맞추며 걷는데도 뒤처져 나이를 절감한다. 뼈마디가 삭아 내리는 것 같은 데다 몸이 지쳐 힘들다. 한 바퀴 둘러봐야 하는데도 날은 덥고 걸음이 비칠거린다.

좀 걷노라니 가파른 언덕길이다. 반사적으로 눈을 치켜뜨니 멀지않은 허공 한 자락에 천수각(天守閣)이 그림처럼 떠 있다. 반듯하고 단아한데 눈을 씻고 보니, 갑자기 평지에서 불쑥 솟아오른 거대한 탑 같아 웅장하다. 어느새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저게 오사카성 천수각이로구나.’ 오사카 하면 상상으로 떠올리던 곳, 실물 앞이라 그런가. 건축도 과연 예술이구나 싶다.

천수각이 정면으로 보이는 지점은 관광객들 포토 존이었다. 떼 지어 이리 흐르고 저리 흐르고. 지저귀는 소리만 들어도 중국인인 게 분명한데 요즘 큰돈을 쥐게 됐는지 중국 관광객들로 북적댄다. 한국 특히 제주로 몰리더니 사드 배치를 물고 늘어지면서 이젠 일본으로 빠지는 걸 목격하고 있다. 유쾌하지 않다.

사람들이 몰렸기에 껴들었더니, 천수각 앞쪽 오테몬문으로 나가는 길에 있는 일본 정원을 눈앞에 놓고 감탄을 터트리고 있다. 무덕무덕 번무한 나무숲도 그렇지만 그에 더한 게 있었다. 수면 위에 실경으로 떠 있는 천수각의 단아한 맵시가 일품 아닌가. 환상적 구도다.

축성에 사용된 돌들의 조합이 눈길을 끌었다. 작은 돌로 담을 쌓듯 불규칙하게 흐르다 거대한 돌을 얹어 놓되, 이내 둘레의 돌들과 어우러지면서 견고하게 쌓아 가는 놀라운 석축술(石築術)의 절묘함이라니. 장비도 변변찮던 시절에 저 거석들을 어떻게 옮겨다 쌓았을꼬. 중국 만리장성에 비할 건 아니나, 절대 권력 아래 수많은 인부들의 희생이 따랐을 법하다. 성 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환청을 몰고 올 듯하다.

호숫가를 유람하는 어좌선(御座船)에 손녀를 태우려는데 매표를 마감했다 한다. 물가 나무 그늘에 서서 유유히 물 위를 미끄러지는 풍경을 바라보다 돌아섰다. 오사카와 작별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