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은 개인만의 소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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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움집에서 생활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집을 짓고 살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곳, 피곤한 몸과 마음을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영국의 건축역사학자인 N.페프스너(1902~1983)는 “차고(車庫)는 건물이고, 대성당(大聖堂)은 하나의 건축이다. 사람이 들어가는 데 충분한 넓이를 갖춘 것은 모두 건물이지만, 건축이라는 말은 미적 감동을 목표로 설계된 건물에만 사용된다."라고 건물과 건축의 의미를 구분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는 스페인 레우스에서 주물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바르셀로나 시립 건축전문학교에서 수학했다. 가우디가 졸업할 때, 대학 학장이 “우리가 지금 건축사 칭호를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미친놈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그는 교수들 사이에서도 논쟁의 대상이 되는 독창적인 학생이었다.

건축을 자연의 일부로 여겼던 가우디는 도로 개설을 할 때도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등고선을 따라 만들었고, 커다란 웅덩이와 능선 사이를 흙으로 메꾸는 대신 육교를 놓는 방식으로 자연 지형을 유지했다.

그의 건축물은 섬세하고 강렬한 색상의 장식과 주로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곡선으로 이루어졌다. 독특한 형태와 문양의 건축물 시설에는 돌과 흙에 유약을 칠하여 만든 다양한 타일을 사용했다.

가우디가 평생의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교회)의 감독직을 수락한 것은 1883년이었다. 이후 사망할 때까지 그는 40여 년간 이 작업에만 몰두했다. 성가족 교회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지금까지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1926년 6월 7일 가우디는 전차에 치었으나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지지 못한 탓에 6월 10일 7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던 그는 말년까지 오로지 건축 작업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초라한 행색으로 인해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가우디는 사후 로마 교황청의 특별한 배려로 성자들만 묻힐 수 있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지하에 묻혔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바르셀로나의 재력가 에우세비오 구엘(1846~1918)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엘은 1878년 처음 가우디를 만난 뒤 1918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가우디의 적극적인 후원자이자 친구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피렌체의 명성이 메디치가와 같은 부자들의 후원으로 얻어진 것처럼, 구엘이라는 부자의 후원으로 오늘날 바르셀로나의 명성이 얻어진 것이다.

건축물은 건축주 개인만의 소유가 아니라 공공예술의 성격을 띠게 되므로, 우리 사회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니는 공동체의 소유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물은 지역의 자연과 환경적 요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개개의 조형성이 뛰어나야 한다.

가우디는 건축물을 그림이나 음반처럼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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