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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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삶과 사후의 경계가 분명함에도 미련이나 아쉬움을 떨쳐버리지 못해 가까이 있는 존재들이 있다. 착하고 여린 감성으로 가족에게 여러 가지 당부를 청하며 지루한 기다림으로 자신을 알리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보이는 모습은 생전의 얼굴과 나이이며 드물기는 하지만 몇백 년 세월에도 일정함을 유지한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어디인 줄 알고 있기에 원한은 푸념으로 변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위로와 슬픈 눈물을 닦아주면 마치 선생님 말을 잘 듣는 학생이 되어간다. 특이한 사항은 약속에 대한 신뢰를 지켜내며 고마움의 표시를 남긴다.

남의 안타까움에 발 벗고 나서며 옳다는 소신에 타협할 줄 모르고 바쁘게 활동하는 분의 저녁 초대에 응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려 하는데 중년의 남성분이 합류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인사를 나누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던 찰나 뭔가 본능을 깨우는 느낌이 들었다. 억지 미소 뒤에는 먹구름이 스쳤고 어떤 사연이 숨어 있었다. 순간 이 자리는 이분을 위한 계획된 만남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누구의 탓보다는 호기심이 우선이었다. 무엇이 궁금하냐고 물으니 본인은 이게 걱정이 아니다 믿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이 든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는데 부인이 심각한 우울증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작년 이맘때 자살했단다. 첫사랑이고 결혼 생활도 순탄해 나름 행복했고 자녀들도 장성해 이제는 편안한 노후를 준비했는데 이런 일을 당해 한동안 폐인이 되어 두문불출 혼자 외로움과 싸웠는데 49제를 치르고 나서 잠을 자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김없이 나타나 신혼의 재미에 빠져든단다. 일상 생활과 다르지 않 식사를 하고 공통의 화제로 웃음을 불러내며 심지어 경험해보지 못한 달콤한 정사로 회춘을 한 듯한 기분이란다.

지극히 위험한 귀접이고 이는 다른 영혼의 장난이며 목적을 위한 유혹이라고 차분히 설명을 했다. 여기서 그치지 못하면 죽음의 그림자는 저승 문턱을 넘어서며 후손에게도 영향이 미치는 악순환이 될 뿐이라고,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당신 몫이라고,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해줄 수 있다 하니 그때야 정신이 들었는지 그리 하겠단다. 간단한 의식을 치르고 집으로 오기 전에 방해꾼의 등장을 알고 미리 떨어져 나갔음을 알았기에 걸음이 가벼웠다. 아침의 전화는 무엇을 따지듯 헤어질 말미를 주지 않았다는 핀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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