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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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처음으로 교복을 선보인 건 배제학당이었다. 1898년의 일이다. 도포차림으로 검은색 두루마기에 허리엔 검정 띠를 둘렀다. 이후 일제 잔재의 교복, 자율화와 이전으로의 회귀 등 중간적 절충과정도 있었다.

지난달 서울시가 중·고학생의 교복과 두발을 자율화한다고 공표했다. 내년 2학기부터 규제를 아주 풀 것이라 한다. 옷이 불편한 정장, 치마 대신 티셔츠나 청바지 등 활동적인 것으로 바뀌고, 머리 또한 길이나 염색·파마 등 자유화가 이뤄진다니 큰 변화가 목전의 일로 가시화됐다. 전격 선언이다.

찬반양론이 첨예한 가운데 여론이 들끓는다. 학생의 기본권과 관련해 개성표현의 권리, 교복의 불편함과 적잖은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찬성하는가 하면 반대 논리 또한 만만찮다. 사복 착용이 학업에 방해가 될 것이고, 빈부 격차가 드러나 위화감을 조성하는가 하면 탈선을 부추길 것이란 추론이다.

교복으로 학생의 권리를 규제하는 것은 온당치 않고 입기 불편하다 함도 맞는 말이다. 일 년을 동·하절기에 따라 입어야 하니 교복 가격도 서민들이 시름겨울 정도로 턱없이 비싸다. 학부모 부담이 가중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교복과 두발 자율화 이후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자율화로 선택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경제적 부담도 어느 수준을 훌쩍 넘어 버린다. 더욱이 머리 염색·파마는 일종의 ‘사치재’다. 이를 허용하면 학부모가 감당해야 할 비용 부담이 자율화 이전과 비교가 안된다. 거기다 일부 학생들이 겪어야 할 상대적 박탈감과 빈부 격차에 따른 위화감이 극에 달할 게 불 보 듯하다.

염려되는 것은 또 있다. 중·고생들은 발달단계에서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시기다. 과도하게 외모 치장에 쏠리면서 곧바로 학업 소홀로 이어지리란 염려 그리고 본분을 이탈해 비행에 노출될 것이란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 학교에서 학생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없어선 안될 장치였는데, 취미대로 입고 파마머리에 염색이라니. 학교 안에 넘실댈 빨강, 파랑, 노랑, 보라색 머리를 상상해 보라. 학업에 전념해 학생다워야 할 우리 자녀들이 그 가파른 변화를 제대로 감당해 낼까.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개인의 취향은 인정하지만 개개인에 의해 공동체 질서가 무너진다는 우려는 ‘깨진 유리창’의 공포심에서 나온다. 이 주장은 그나마 학교 현장에 매달리고 있는 교사들에게 설득력을 갖는다. 학교가 규칙을 엄하게 집행하는 이유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데….

하지만 이건 지나친 두려움이라 말한다. 느슨해지는 게 반드시 붕괴를 뜻하지는 않으며, 어쩌면 민주사회의 필연적 결과물일지도 모르고, 머리를 깎아 버리는 것은 그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반 헌법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고학생들은 아직 미성년으로, 감정통제가 힘든 질풍노도의 세대다. 한 번 잘못 접어든 길이 자신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개연성이 우리를 충분히 당혹하게 한다.

혼란스럽다. 규제는 개인의 자유가 강조되는 시대정신이 아닌 전근대적 악습이고 자율성 침해며 지나친 우려는 억측이라 말한다. 자율화 바람, 이미 물꼬를 터 버렸나. 막을 수 없는 도도한 강물의 흐름인가. 학생 시절의 교복과 두발은 평생을 두고 남는 아름다운 추억거리라, 끝내 아쉬움이 따른다. 풀리지 않는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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