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관 냉면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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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평양냉면은 대표적인 향토 음식 가운데 하나다. 서울에도 꽤 잘하는 평양 냉면집이 많지만 지역의 대표성 때문에 원조의 권위는 언제나 평양이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게 옥류관이다.

남측 인사들이 평양에 가면 으레 한 번쯤 들르는 곳이다. 지난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때는 회담장으로 출장 서비스까지 했다. 북한이 그만큼 자랑하고 싶은 메뉴가 옥류관 냉면인 셈이다. 남북 관계에서 빠질 수 없는 키워드가 된 느낌이다.

필자도 지난 1990년대 초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을 때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었던 적이 있다. 맛이 어떠했는지는 다 잊어버렸지만 북측 인사가 마주 앉아 최소한 두 그릇은 비워야 한다며 계속 권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북측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옥류관 냉면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탈이 났다. 얼마 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특별수행원으로 간 남측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면박을 준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논란까지 일었다. 남북 경협에 대한 성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 그런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목구멍이라는 단어의 비하적 성격 때문에 무례하다는 반응이 많다.

사실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라고는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면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속담까지 은연중에 떠올리며 목이 멜지도 모른다. 아무리 악의가 없었다고 해도 그냥 목구멍으로 넘기기엔 너무 껄끄럽다.

행사를 할 때 한국인들은 먹는 일에 꽤 많은 비중을 두는 편이다. 가진 게 없어도 손님 접대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쓴다. 남북한이 비슷하다. 그래서 늘 남북 행사에서 누가 무엇을 먹었고 무슨 술을 마셨는지가 화제가 되고 또 그런 음식을 파는 맛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한다.

먹는 행사가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곳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정치권이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누가 되든 그런 행사가 빛나는 전통처럼 이어진다. 못 살 때나 잘 살 때나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또 언론은 그런 걸 시시콜콜하게 보도하고 국민들은 너나없이 귀를 쫑긋 세우며 관심을 보인다.

행사의 성격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논의됐는지는 아예 뒷전으로 밀린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밥 먹기 위한 행사가 아닐까 싶은 것도 있다. 만일 그런 게 있다면 이젠 국격을 생각해서라도 그만 두어야 한다. 국민 세금을 그런 식으로 사용한다는 건 국고 낭비이기도 하다.

물론 남북 교류든 청와대 행사든 일을 하다 시간이 되면 밥을 먹을 순 있다. 하지만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해야할 사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오찬이니 만찬이니 하면서 먹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듯한 인상을 주는 건 옳지 않다.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셔야 친교가 되고 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국민 세금은 아껴 써야 한다. 그리고 꼭 먹어야 한다면 평양냉면이든 햄버거든 조용히 먹고 일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게 민주주의 시대에 더 부합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먹는 일 가지고 남과 북이 얼굴을 붉히거나 정치권이 왈가왈부한다면 정말 한심하고 맥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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