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여인의 붓끝에 서린 울부짖음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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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최문희/다산책방)
"제도·인습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혔지만···시·그림으로 내면 표출"
"강인한 제주 여성과 초희 모습 닮아···진취적 삶 변해 존중 받아"
강명부씨(사진 오른쪽)와 김희경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이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마을 일원에서 독서대담을 나누고 있다.
강명부씨(사진 오른쪽)와 김희경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이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마을 일원에서 독서대담을 나누고 있다.

『난설헌』
최문희 / 다산책방


▶책 소개
조선시대 천재 시인 허난설헌의 삶과 내면을 그린 소설. 시대의 벽을 뛰어넘고자 했던 여인의 삶을 한편의 세밀화처럼 꼼꼼하게 풀어낸다. 어린 시절 집안에서는 귀한 존재로 자라며 천재의 싹을 보여줬지만, 사회 분위기에 따라 15세에 혼인하며 초희(본명)는 시대와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 가로놓이게 된다. 슬픈 운명을 타고난 여인. 그녀가 사백년이 지난 지금 다시 태어났다.

▶대담자
강명부: 농업인.
       농촌 마을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농촌 환경을 접하게 되었고, 현재 시부모님을 모시며 남편과 함께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농사에 종사하고 있다.     
김희경: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라는 논어의 글귀를 늘 마음에 품고 산다.

▶김희경위원(이하 ‘김’): 책을 읽기 전, 난설헌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강명부씨(이하 ‘강’): 조선시대 뛰어난 여류시인으로, 허균의 누이였다는 점. 동생 허균에 의해 ‘난설헌집’이 발간되었고, 우리나라보다는 중국과 일본에서 더 유명했다는 점, 그 정도 밖에 알지 못했어요.

▶김: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강: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랄까. 종종 들리는 뉴스나 주변의 유사한 이야기들과 함께 난설헌의 일생이 새삼 낯설지 않게 느껴지면서 그녀의 일생이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아마도 21세기 여성의 지위가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뛰어넘는 여성의 삶이란 게 여전히 있기에 저 역시 왜소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김: 생전에 그녀는 ’소천지(조선)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왜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는가?’라며 신세한탄을 하기도 했는데요. 난설헌의 삶을 어떻게 보셨나요?
강: 조선시대의 제도와 인습 속에서 결혼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그녀의 삶이 안타까웠습니다.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으며 맹목적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시어머니와의 갈등, 아들 손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당했던 큰 딸, 몸이 약해 친정으로 피접가서 낳은 아들, 두 아이 모두 시어머니의 아집으로 거두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된 슬픔까지. 시대와 남편만을 탓하기에는 초희의 인생이 허망하게까지 느껴집니다.
저 또한 밭일하느라고 젖먹이 아이를 80넘은 시할머니에게 맡기고 3시간마다 수유하러 오가며 키웠고, 초등학교 폐교위기로 제주시로 갈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으로 인해 시부모님이 제주시에서 아이들을 키웠기 때문에 무엇보다 아이들과의 애틋한 심정은 조금이나마 공감이 됩니다.
너무도 짧고 불행한 삶을 산 여인이지만 그로 인한 고독과 외로움은 붓끝으로 표출되고, 모든 굴레와 슬픔이 시로써 노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일생이 저와 무관하지 않은 것만 같은 생각이 들며 마음이 답답하고 저려왔습니다. 27세의 생을 불꽃처럼 태운 문학의 열정만은 영혼으로나마 우리들 마음속에서 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 예전의 제주여성의 삶도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난설헌의 삶과 비교하신다면?
강: 난설헌의 삶이 새삼스럽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도 제주여성의 삶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주에는 4.3사건을 겪으면서 남자의 수가 여자에 비해 현저하게 모자라게 됐는데, 그 때문에 남자들은 가부장적이면서도 밭갈이 외에는 여자가 밭일을 하는 것을 당연시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자들은 물때가 되면 물질을 해야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물을 길어오고 소 먹이를 주고, 집안 대소사를 모두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제주 여성들의 삶이 고단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한편으로는 억척스럽게 보이기도, 한편으로는 강인해 보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또한 예전에는 남아(핏줄)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본처가 딸만 있는 경우는 후처를 보곤 하였기 때문에 두 집 살림이 많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아들을 못 낳았을 경우에는 두 집 살림을 묵인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남편을 잃었을 경우에는 생계를 위해서 밭갈이를 할 남자 인력이 필요하여 자진해서 후처로 들어가기도 했지요.

▶김: 제주여성의 강인함을 담은 제주의 문화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강: 타지에서 오신 분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안거리 밖거리 문화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아들이 결혼을 해도 며느리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살림은 자신이 계속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고부갈등이 많은 것을 보면, 옛날 어머니들이 현명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가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돌볼 수 있고, 자식에게 기대지 않으며, 자식들 또한 자유를 갖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저 역시도 그럴 생각입니다.

▶김: 현재 제주도 농촌 여성들의 모습을 예전과 비교하신다면?
강: 지금도 우리 마을 어머니들은 밭일도 하고 물때가 되면 바다에 가곤 합니다. 하지만 그 양상은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바다에 나가 물질하던 것도 그저 생계수단이었던 예전과는 달리(물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지만), 마을 행사 시에는 해산물을 아낌없이 내놓아 나눔의 기쁨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농산물 생산에서도 소비자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상품을 연구 개발하면서 능력을 키우고 노력을 하는 등 자아성취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전에는 여성들이 노동중심적인 집안 대소사를 도맡았다면, 지금은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집안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곤 합니다. 그래서 요즘 비료나 농약 판매상조차도 남성분들보다 여성분들이 파워가 있다 하여 여성위주로 판촉을 많이 한다고들 합니다. 현재 농촌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일과 단체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 취미생활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존중 받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 마지막으로 초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강: 어차피 그 시대의 여자로 살아야 한다면, 자신이 넘어야 할 산이지만 반드시 넘으려고만 하지 말고 때론 쉬어가고 힘들면 안 넘어도 된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남편과 시어머니 마음을 붙들기 위해 노력해보라고도 할 것입니다. 그래도 되지 않으면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하겠습니다. 사회제도나 가문의 체면이 자신의 삶보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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