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긴 발자국은 아름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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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전 제주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 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잘못이많았음을알았네./ 마음을 쏟은 뒤에야/평소에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중국 명나라 문인 진계유)

학교 정문 쪽 벗나무가 잔잔하게 떨고 있다. 지난 해 봄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품고 있을까? 잎을 뿌리로 떨구고 나목이 된 뒤에야잎이 무성할 때 마음씀이 경박했음을 후회하고 있을까?

이 벗나무들은 자연의 섭리와 순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고, 무소유와 과유불급의 의미를 인지하고 있다. 언제 꽃을 피워야 하고, 이것들을 떨구고 녹색 옷으로 갈아 입은 후 변색시킬 때도 잘 알고 있어 뒤에야라는 단어가 필요없다.

인간은 뒤에야라는 용매 속에 후회와 회한이라는 용질을 녹인 바보라는 용액을 먹으며 삶을 지탱하고 있다. 인간은 시고, 쓰고, 짜고, 매운 이 용액을 끊임없이 되풀이해 마시고 있다. 고질병의 근원인 뒤에라를 어떻게 하면 싹둑 잘라버릴 수 있을까?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침묵의 무게를 느끼면서 하루동안 내가 쏟아낸 언어들 중에는 쓰잘머리 없는 소음이 많았음을 실감한다.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들의 체중에 허탈해진다. 언제쯤 진중한 마음을 표현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요리할 수 있을까?

정호승의 발자국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동안 학생들에게, 사회에, 자연에 어떤 모양의 발자국을 남겼을까? 남은 발자국들끼리 서로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울까? 허울 뿐인 발자국 소리와 모양만 남긴 것 같아 가슴이 아린다.

올 해도 청초하면서 샛노란 수선화가 자신을 뽐낼 무렵에 복수초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이 꽃들이 바로 지난 세월 발자국들끼리 서로 뜨겁게 한 몸을 이루다가 녹은 산물의 걸작품일 것이다. 새벽 이슬보다 더 영롱한 향기는 이 꽃의 어디쯤에 매달려 있을까?

이들은 자연의 순리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또한 이들은 침묵을 배경으로 자연을 가꾸기 위해 쉼없이 노력한다. 이들은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수선화도 복수초도 뒤에야라는 표현을 모른다.

이들의 개성있는 노란색 때문에 가슴 설렌다. 이들은 겨울에도 침묵의 흙 속에서 특색있는 잎, 노란꽃, 하얀 향기를 제조표현하면서 한 치의 틈도 없이 질서를 지켰다. 이들은 자신이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정확히 알고, 항상 평상심을 유지하고 경박하지 않는다.

이들은 필자의 정원에 시집온 후에 정착하는 과정이 힘들고 고독했을 것이다. 초기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정원의 기후와 토양과 사투를 벌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식물들은 평소에 친구들에게 마음씀이 고왔어 많은 이들로부터 다양한 칭송을 받고 있다.

더구나 복수초는 교통질서를 더 잘 지킬 것 같다. 며칠 동안 기후의 적신호가 켜졌을 때 이의 성장이 멈췄다. 제법 긴 시간 동안 빨간불이 켜져 있어도 불평없이 잘 기다리며 순응한다. 아예 과속은 생각지도 않는다. 복수초의 너무 순박하고 겸손한 자태가 안쓰럽다.

이처럼 식물이 남긴 발자국은 질서정연하고, 유유자적하다. 그 누구도 식물과 같은 고운 발자취를 흉내낼 수 없다. 인간의 발자국에는 뒤에야라는 바보스러운 뒷모습이 점철되어 있다.

우리도 자신만의 인생 결정체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고, 이에 의한 인생 산물을 자신의 발자국에 담담하게 담아낼 수 있는 멋있는 존재가 되면 고운 향기가 자욱한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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