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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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것, 후각을 자극하는 기운이 냄새다. 향기도 냄새지만 향기를 굳이 냄새라 않는다. 꽃에서 나는 좋은 냄새가 향기이고 제단에 분향하며 사르는 것은 또 향이라 한다. 냄새란 말엔 관념적으로 독특한 분위기가 깃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못 살던 시절, 물까지 귀해 제대로 빨지도 않은 채 옷 한 벌로 며칠씩 입고 다닌 어렸을 적을 떠올린다. 몸에서 풍기는 땀에 전 냄새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집에서건 교실에서건 힘들었을 것이다. 한데 그때 냄새에 지겨워했던 기억이 전혀 없는 건 웬일인가. 그런 속에 살아 코가 마비됐을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몇 날 며칠 한여름 조밭에서 김매며 몸에 뱄던 어머니의 땀내는 지금도 코언저리에 얼얼하다. 어머니에게서만 나던 냄새다. 비 오는 날만 빼고 밭에 살았던 어른이라 그랬을 것을 지금에야 안다.

초저녁 골목을 지나다 이웃집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면, 오늘 이 집에 제사로구나 했다. 못 먹던 때라 고기 굽는 냄새는 골목 안에 진동했다. 목으로 군침이 넘어갔다. 뒷날 새벽 울담 넘어온 제사 퇴물은 그야말로 일미(一味)였다. 고기 굽는 냄새로 이미 자극을 받은 거라 맛깔을 더했던 것이다.

산업화를 거치며 갑자기 풍요로운 삶 속에 편리에 길들면서 날로 인정이 메말라 갔다. 물신주의의 팽배로 나타난 게 부조리와 인간상실이다. 갑자기 사람이 그리워 나온 말이 있다. ‘사람냄새’. “모름지기 사람냄새가 나야지.” “그래도 그에게선 사람냄새가 난다.” 말끝에 달아 가며 사람냄새를 간구(懇求)했다. 사람에게서 샘솟듯 우러나오는 정에 목을 축이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스스럼없는 말과 우애로운 웃음과 손잡으면 번지는 서로 간의 따스한 훈기….

지난번 오랜 전통과 관록의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우리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아주 놀랐다. ‘냄새’를 말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 말이 몹시 별나게 다가왔다.

언덕 위 부잣집 박 사장은 자신의 운전기사가 된 반지하의 가난한 가장 김 씨에게서 “무슨 냄새인지 잘 설명할 순 없지만 지하철 타는 사람들한테서 나는 그 이상한 냄새”를 맡는다. 박 사장의 아들은 이 집을 드나들게 된 김 씨 가족에게서 다 똑같은 냄새가 난다며 코를 킁킁거린다. 이를 전해들은 김 씨의 딸은 그 냄새의 정체를 ‘반지하 냄새’라고 규정한다. 경력을 꾸며 내서 박 사장 집 과외 선생과 운전기사와 가정부가 될 만큼 거짓말에 능통한 김 씨 가족도 몸에 밴 냄새는 어쩔 수 없었다.

냄새는 영화에서 상징성을 지니면서 사회 계층 간의 벽을 풍자했다. 고기 굽는 냄새와 반지하 냄새는 곧 넘어설 수 없는 계층의 높은 벽의 함의(含意)다. 고기 굽는 냄새가 고소한 만큼 반지하에서 나는 가난한 사람의 냄새는 얼마나 퀴퀴하고 고약하고 눅진할 것인가. 오늘의 우리 사회는 부자와 가난한 자로 극명하게 양극화돼 있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또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계획’이었다. 가족들은 가장인 김 씨에게 계획을 묻는다. 가장은 그때마다 무계획이 계획이라 말한다. 인생은 어차피 계획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므로 무계획이 최선의 계획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물난리에 가난한 사람의 냄새가 김 씨 반지하에 넘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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