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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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임 수필가

비몽사몽, 낑낑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보랏빛 유리창 너머 여명이 밝아오면 내 손등을 긁어대는 카뮈가 밖에 나가자고 신호를 보내온다. 카뮈와 나의 운동시간이다. 밖은 고즈넉하여 인기척이 없다. 실바람에 치자꽃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동녘으로 치솟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창조주의 전능하심에 경이를 드리며 두 팔 벌려 한껏 안아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종일 우리에 갇혀있던 카뮈는 자기 세상인양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을 쫓으며 사슴처럼 뛰어다닌다.

까뮈와의 인연은 지지난해 겨울, 눈보라 치던 날 시작되었다. 길거리를 헤매는 아기 견의 모습이 애처로워 선뜻 품에 안았다. 품종은 푸들잡견으로 까만 털에 기다란 속눈썹과 꼬리에 밤톨만한 흰 점, 가슴에는 별 모양의 하얀 털이 매력이었다. 암컷이기에 이름은 카뮈라고 불러주었다.

카뮈가 집에 온 뒤로 남편과 나는 녀석의 재롱에 늘 화기애애했다. 카뮈도 가족의 정이 그리웠을까? , 마려우면 끙끙대는 신호를 보내고 혼자 두고 외출할 때면 스트레스 때문인지 종이를 찢는 등, 온 집안을 난장판이 되기도 했다. 개의 조상은 수만 년 전 늑대가 시조라고 했다. 아기견일 때 사나운 성격에 점프하는 모습까지 흡사 맹견의 후예임을 염려하며 고민도 했다. 그런 나와 달리 남편은 잠을 잘 때도 카뮈를 데리고 잤다. 조부모가 손주 버릇을 낸다는 말이 있듯이 카뮈에 재롱에 반한 남편은 맛있는 음식만 골라 먹여 편식 버릇을 길러놓았다. 어쩌다 내가 카뮈에게 야단을 치기라도 할 때면 남편은 내게 동물 학대죄로 고발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남편이 투병 중일 때도 카뮈는 그 곁을 지켰다. 그는 곁에서 반려가 되어준 카뮈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까뮈와 떨어져 있을 때는 영상통화를 했다. 남편의 음성이 들릴 때면 카뮈는 고개를 치켜들고 울었다. 남편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춘삼월 수선화가 함초롬히 필 무렵 남편은 영원히 먼 길을 떠났다. 그가 떠난 뒤 카뮈는 우울해 했다. 초롱초롱하던 눈망울은 초점을 잃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빈자리가 나와 카뮈 모두에게 크게 다가왔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주방 앞에 앉아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차츰 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벌렁 누워 배를 보이며 온갖 아양을 부릴 때 품에 안아주면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저보다 더 행복한 삶은 없다는 모습이다. 그의 빈자리를 카뮈가 대신하며 동반자가 돼주었다. 출근하여 귀가할 때까지 섬집 아기처럼 엄마를 기다리는 카뮈. 잠자리에 들면 팔을 베고 눈만 깜박거린다. 무슨 생각하는 것일까? 애완견 자신도 모성 본능을 느끼며 인간으로 망각하는 것은 아닌지.

오늘 밤도 천하태평으로 곁에서 졸고 있는 카뮈를 바라보며, 이 영물과 나 사이의 인연을 생각해 본다. 대체 이 영물은 무슨 인연으로 우리 곁으로 왔을까. 어떤 배려로 남편과 나의 위로가 되어주고 있을까.

카뮈가 남편과 내 품에 온 그 눈보라 치던 날은 은총이 내린 날인가 보다. 내 사랑 카뮈, 내 생의 남은 날을 함께 갈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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