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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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기 시인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불후의 대하 소설 토지를 남긴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에 담긴 시 옛날의 그 집에 나온 시구이다.

지난 유월 말 제주시조문학회원들과 함께 짧은 문학기행 통영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 통영은 한국의 나폴리라고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항구이자 우리가 잘 아는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윤이상 등 한국의 유명한 예술가들을 배출한 예향이다. 회원들과 하나하나 정을 나누는 기쁨도 컸지마는 그 보다 박경리 기념관에 들렀을 때 나에게 안긴 그 시구 때문이다.

여행은 누구와 어떤 목적으로 가느냐에 따라 보고 듣고 느끼는 게 다르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통영은 여러 번 갔었다. 역사적 장소인 한산도와 세병관 등을 둘러보기도 했고 미륵산에 올라 남해의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했으며 중앙시장에서 활어회에 소주를 실컷 마셨던 기억도 새롭다. 그 때도 김춘수 문학관이나 박경리 기념관을 들렀으나 친구들 중심으로 대충 본 것임이 분명하다. 박경리 묘소까지 분명 갔었는데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이 시구가 어찌하여 나에게 오지 않았을까. ‘움켜쥘 게 많아서 참 갑갑하다인 나에겐 보이지 않았던 게 너무나 당연한지도 모른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심불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불지기미)]”대학의 구절이다.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에 비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존재를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깨어있다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본다의 의미와 가까울 것이다.

시만 마음에 드는 고은의 시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보지 못한/그 꽃을 조아려본다.

나도 내려갈 때가 되어 그 시가 보인 것일까. 제주로 내려오며 머릿속을 감도는 그 말, 나는 무엇을 가지고 가고 무엇을 버리고 갈 것인가. 토지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과 명예와 재산을 버리고 갈 것이라 말한 박경리 선생님, 버리고 갈 것이라 생각했을 때 진정 그 모든 것을 갖고 가신 진정한 무소유의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19261028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20085월 향년 81세로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긴 39편의 시에 한국의 대표적 화가 김덕용의 정감어린 그림을 더해 2008년에 출간된 유고시집이다. 버리고 가도 시는 남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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