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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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요즘같이 후덥지근한 날씨에는 금방 음식이 상하기 일쑤다. 특히 기제사가 여름에 있으면 음식보관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아마도 할머니가 살아계신 집에는 차롱 몇 개씩은 가지고 있다가 기제사에 꺼내어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그릇에 보관 하면 공기가 통하지 않아 상하기 쉽지만 차롱에 담아두면 공기가 통해 물이 생기지 않고 특히 대나무의 찬 성질 때문 음식을 훨씬 오래 보관할 수가 있다. 우리 집에도 어머니의 세월만큼 함께 한 차롱들이 몇 개 있다. 테두리는 헐어 나일론 끈으로 다시 두른 것이 세월의 흔적들이다. 플라스틱그릇들이 다양하게 많지만 마른 음식을 담아두는 용기는 지금도 차롱을 사용하신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뒤뜰에 있는 감나무에 차롱이 매달려 있었던 장면은 액자처럼 선명하다. 지금은 압력밥솥이 있어 한 번에 밥을 해도 잘 익지만 예전에 보리쌀은 한 번에 밥을 하면 잘 익지 않아서 삶아두었다가 다시 밥을 해 야 보리쌀이 잘 퍼져서 먹기가 좋았다. 여름철에는 삶은 보리쌀이 상하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 집집마다 차롱에 담아 그늘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나무에 걸어두는 것이 최고의 보관법이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물건들이지만 예전에는 꼭 필요한 생활용품이었기 때문 집집마다 안뜰 담장에 수리대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밭이지만 담장 둘레에 수리대나무가 있으면 예전에 집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담장에 수리대가 심어짐으로 생활용품을 만들 자원도 얻지만 여름에는 그늘이 되어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면서 장독대에 적당한 온도를 유지시켜주고 겨울이면 찬바람을 막아주어 자연적으로 장독대 관리가 되었다. 그리고 담 너머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시선을 차단해주기도 했으니 우리 어머니들은 그곳에서 안심하고 등물을 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수리대로 필요한 생활용품을 만들며 살아왔던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은 그 물건이 만들어지기까지 공력과 시간을 알고 또 그 쓰임새를 알기에 소중히 여기며 오늘까지 가지고 있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그렇게 물건 하나하나에서부터 훈련되어 단단하게 굳어졌던 것은 아닐까.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들이 넘쳐나기 때문 쉽게 버리지는 것들도 넘쳐나고 있는 시대다. 아무리 많은 물건들 속에 살아가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 하며 지나온 시간의 이야기가 묻어 있는 물건들은 어떤 물건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세월의 흔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면 그 물건과 함께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 자녀들에게는 유산이 될 것이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그 물건의 가치를 볼 수 있는 안목이 키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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