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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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윤 수필가

마름모를 닮은 테이블마운틴으로 향한다.

제주도와 함께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된, 남아프리카의 케이프 반도 북단에 위치한 하늘 식탁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산이다. 구름으로 덮이는 날이 많고 잦은 악천후로 여행자 반 이상이 이곳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간다고 한다.

장로님, 권사님이 계시면 기도하세요.” 일정을 갈무리하며 내일 날씨가 걱정스러운 듯 가이드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다.

이튿날 아침, “3대에 걸쳐 덕을 쌓은 분들이 있나 봐요”, 가이드의 한 마디에 버스 안에 생기가 돈다. 서둘러 테이블마운틴으로 올라가는 동그란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60여 명을 태운 케이블카는 빙글빙글 돌며 풍광을 펼쳐 보인다. 창밖으로 보이는 붉은색 지붕, 초록빛 나무, 고층 건물 등이 대서양의 푸른 바다와 어울려 그림 속 도시 같다. 사자 머리를 닮았다는 라이온스 헤드, 야경으로 유명한 시그널 힐, 2010년 한국 월드컵 축구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성공한 그린포인트 스타디움이 또렷하다. 깎아지른 절벽을 닿을 듯 회전하며 5분여 만에 해발 1067m의 케이블 역에 내렸다.

산이 산이기를 거부한 산, 하늘과 신이 마주한 산정의 대평원이다. 85천만 년 전, 바닷물에 잠겨 있던 모래땅이 용암의 분출력과 대륙판 이동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 뒤 오랜 세월 침식 과정을 거치면서 꼭대기 부분이 나무에 대패질한 듯 평평하게 됐다. 동서 3.2, 남북으로 10에 걸쳐 펼쳐진 축구장 15배 크기다. 이곳에는 1500여 종의 식물과 희귀 동물이 더불어 살고 있다. 산책로에 들어서자 길목에서 마주한 것은 청동판에 새겨진 시구다.

하나님, 참으로 멋진 세상입니다! 주님 곁에 두신 지혜로 그 모든 것을 만드시고 주님의 아름다운 것들로 땅이 가득 차게 하셨습니다.”(시편 10424)

창조주의 오묘한 솜씨를 찬탄하는 듯. 시인의 시심과 일체감을 느끼며 화강암 덩어리를 깔아놓은 길을 밟는다. 어떻게 터를 잡았는지, 바위틈에 한 줌 흙을 움켜잡고 뿌리내린 꽃들이 소담한 자태를 뽐낸다. 따사로운 햇살에 쪼그려 앉아, 무지개 색깔로 화장한 킹 프로테아, 핀보스, 에리카 등과 눈 맞춤하노라니, 하늘 향기가 영혼에 스며든다. 꽃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데 시샘하듯 아가마 도마뱀이 불쑥 다가온다. 작은 토끼를 닮은 바위너구리도 오물오물 풀을 씹으며 포즈를 취한다. 태초 에덴동산이 이와 같았을까.

걸음을 옮긴다. 하늘 식탁의 기운을 받아 마음도 상쾌하다. 모자가 날아갈 듯 바람이 거세지만 아침 햇빛에 대서양의 물결은 하얗게 눈부시다. 양탄자처럼 펼쳐있는 케이프타운 도심, 포토 존에서 행복을 찍는 표정들. 해안을 따라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하는 열두 사도 봉이 병풍 그림 같다.

아스라이 보이는 로벤 섬이 시선에 와 닿는다. 넬슨 만델라(19182013)가 인종분리정책에 항거하다 18년간 옥고를 치른 감옥섬, 가파도 면적의 3배쯤 되는 야트막한 섬이다. 이제는 자유 기념관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만델라는 눈뜨면 보이는 하늘 식탁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흑인과 백인을 차별하지 않는 세상에서 인류 모두가 천국의 아이들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그의 꿈을 곱씹으며 1시간쯤 걸었을까. 홀연 구름이 파도처럼 밀려오더니 열두 사도 봉을 덮는다. 예수가 테이블 위에 식탁보를 펼쳐놓고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는 중이라 한다. 사위가 어두워지며 겨울바람이 온몸으로 기어든다. 피난처를 찾았다. 태곳적 바위 위에 돌을 쌓아 지은 시골 교회당을 닮은 테이블마운틴 카페. 앞서 온 사람들로 자리가 없어 비닐로 사방을 두른 야외테이블에 앉았다. 따스한 찻잔을 들고 하늘에 펼쳐놓은 구름의 습작을 바라보는데, 이름 모를 새들이 탁자 주위를 맴돌다 스스럼없이 내려와 앉는다.

창조주의 눈에는 흑인이나 백인, 지식인이나 문맹인, 가진 자나 못 가진 자 모두 하늘 식탁처럼 평등하지 않을까요.’ 하늘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

새들이 어디론가 떠나자 만찬이 끝났는지 구름이 시나브로 걷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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