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고訃告
어떤 부고訃告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운진 동화작가

어제는 어떤 분이 유명을 달리했을까? 신문을 펼쳐들고는 부고부터 확인한다. 지인의 갑작스런 부고를 접해 경악하기도 하고 요절한 젊은이 부고를 대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간혹 안타까운 죽음도 있지만 대부분 부고는 호상好喪이다. 망백望百을 바라볼 즈음 세상을 하직한다면 호상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조간신문을 보면서 시작하는 내 일상의 단면이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으로 기억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늘 함께 지내며 친하게 지냈던 분의 부고가 실려 있었다. 누구 어머니로만 알고 살았었는데 비로소 고인 이름을 대하게 된 것이다. ‘! 이제야 평안을 찾으셨구나.’안도의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조의를 표해도 모자랄 판에 안도라니? 십 여 년에 걸친 모진 투병생활을 잘 아는 터라 나온 안도감이었으리라. 하지만 고인 존함을 부고에서 알았다는 것은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 밤 오랜 투병 끝에 제 이름을 찾고 생을 마감한 고인의 명복을 빌어 본다.

생애 마지막에 와서야 제 이름을 찾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 우리네 어머니들 슬픈 자화상을 대하는 듯 마음이 아프다.

몇 달 전 이런 부고도 보았다. 상주 이름이 커다랗게 쓰여 있었고 그 뒤에 화려한 직위가 3개나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어서 조그맣게 달려있는 망자亡者 이름이라니겨우 아들 이름 밑에 의지해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죽어서야 자신 이름을 되찾고 세상을 떠나는 분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삼촌이나 누구 어머니로만 불리다가 삶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에야 되찾는 당신 이름들을 대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 온다. 상주 직위나 직책을 널리 알리고자 함은 아닐 진데 부고를 보면서 안타까움이 밀려오는 건 어인일일까?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곳은 어디일까? 마지막 가는 길 부고에 남기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혼란스럽다.

아름다운 이 세상 마지막 가는 길도 아름다워야 한다. 겸손하면서 망자에게 예를 갖춘 아름다운 부고를 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어머니들 고달픈 삶을 말해 주는 것 같은 부고를 대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후손들 이름 뒤에 숨어서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하듯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 앞에 우리 모두는 겸손할 필요가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름 없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이제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자식들을 키우며 제 이름조차 찾지 못한 우리 어머니들에게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당한 이름을 찾아 드리는 방법은 없을까? 상주 직위 뒤에 숨어있는 고인의 이름을 발견하는 건 우리를 슬프게 하기에 하는 말이다. 장마가 끝난 밤하늘은 별들로 총총하다. 별들도 내 뜨락에서 더위를 식히는 한여름이지만 입추가 코앞이고 보면 가을에 자리를 넘겨줄 날도 멀지 않았으리라. 자연의 섭리 앞에 겸허해지는 밤이다. 지금쯤 그 삼촌은 생전에 친하게 지내시던 우리 어머니를 만났을까? 아픔이 없는 세상에서 어머니와 내내 영생을 누렸으면 좋겠다. 오늘밤에도 잠시 머문 이 세상을 떠나는 모든 영가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해 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