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첨단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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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석, 제주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논설위원

인류 역사에서 거의 모든 전쟁은 첨단기술을 가진 자가 승리하였다.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 상투적인 전법을 답습한 자는 새로운 기술과 전략으로 무장한 상대방에게 늘 패하였다.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하는 미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경제 전쟁 속에서 우리는 첨단기술의 우위를 확보하도록 긴 호흡을 갖고 힘을 쏟아야 한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군이 참전했다. 이라크군은 세계 10위 안에 드는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었다. 미군은 먼저 B-52 폭격기, 토마호크 미사일,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해 제공권을 확보했다. 결국, 이라크의 탱크부대와 지상군이 고속도로를 이용해 쿠웨이트에서 후퇴하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미군의 전투기가 고속도로에 일자로 늘어서 있던 이라크 탱크와 차량을 향해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앞뒤로 꽉 막혀 옴짝달싹 못 하는 탱크와 차량은 온전히 전투기의 먹잇감이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잇는 고속도로는 ‘죽음의 고속도로’가 되었다.

칼과 창은 서서 휘두르지만, 총은 엎드려서 쏘기 때문에 피해를 주는 정도가 다르다. 1893년 창과 방패로 무장한 아프리카 원주민 3000명과 맥심 기관총으로 무장한 영국군 700명이 싸웠다. 분당 500발을 쏘는 맥심 기관총 앞에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영국군 앞에서 모두 쓰러졌다. 1898년 아프리카에서 5만2000명의 이슬람 군대와 2만 명의 영국군이 싸웠다. 영국군의 맥심 기관총은 5시간 동안 냉각수를 받으며 이슬람 군대에 총알을 퍼부었다. 승리는 영국군이 차지했다. 재래식 칼과 창은 첨단기술로 무장한 기관총을 못 이겼다.

1868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오스트리아군은 총구 앞으로 화약과 총알을 넣어 장전하는 재래식 소총을 썼다. 오스트리아군은 일어서서 총알을 장전해야 했다. 프로이센군은 총구 뒤에서 총알을 장전하는 드라이제 소총으로 무장했다. 프로이센군은 땅에 엎드린 자세로 총알을 장전하였다. 드라이제 소총의 총알은 종이로 화약과 탄환을 일체형으로 포장하였기에 장전하는 데 6배나 시간이 짧았다. 서서 쏴 자세로 사격하는 오스트리아군은 총검술에 의존하였기에 밀집된 대형으로 진격했다. 땅바닥에 엎드린 프로이센 병사들은 밀집된 오스트리아 병사들에게 총알을 명중시켰다. 프로이센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엎드려 총을 쏘게 된 군인들은 참호를 파고 적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둘러쳤다. 적의 참호를 공격하려면 보병의 진격이 필요했지만 피해가 막심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탱크 아이디어가 영국 육군에 접수되었다. 모두 퇴짜를 놓았지만 그 당시 해군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탱크의 가치를 알아차려 개발을 추진시켰다.

처칠은 수상이 되어 독일 히틀러의 공격을 막아 영국을 지켜야 했다. 처칠은 독일군 암호를 해독하는 책임자에 앨런 튜링을 임명하였다. 튜링은 인간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독일군 암호를 기계의 힘으로 풀었다. 튜링은 대학원에서 그 당시 첨단이론이었던 “참이지만 증명 불가능한 명제가 있다”라는 괴델 정리를 배웠다. 튜링은 괴델과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도 괴델의 정리가 증명될 수 있다는 논문을 선보였다. 이 논문에서 컴퓨터의 개념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왔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는 구태의연한 재래식 기술과 관습을 허물면서 전면에 등장해 왔다. 첨단기술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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