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의 경관학
묘지의 경관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오상학, 제주대학교 지리교육전공 교수·박물관장/논설위원

바야흐로 벌초의 계절이다. 음력 8월 초하루를 전후한 주말은 온 제주가 벌초로 분주하다. 벌초는 집안의 연례행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인식된다. 문중의 모둠벌초가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친척끼리 모여 조상의 묘지를 찾아 나선다. 요란한 예초기의 엔진 소리가 산야를 뒤덮는다.

묘지를 산소(山所)라고도 한다. 산소는 말 그대로 산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은 산악 국가라서 도처에 산들이 있다. 백두산, 한라산 등의 거대한 산도 있지만 앞산, 뒷산, 동산 등의 야트막한 산도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조금만 높아도 산으로 본다. 무덤도 평지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산이라 했다. 산자락에서 태어나서 죽으면 다시 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인생 경로였다.

제주의 묘지 경관은 육지와 다르다. 풍수지리가 제주사회에 도입되기 전에는 마을 주변의 경지나 초지에 묘지를 조성하였다. 죽은 자의 공간이 산 자의 공간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공존했던 것이다. 지금도 해안 지대의 밭이나 과수원 가운데에 묘지가 조성된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풍수지리가 제주사회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묘지는 마을을 떠나 오름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풍수지리의 형국론에 따라 더 나은 명당을 찾아 위쪽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산소가 오름과 목초지로 이동하면서 산담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다. 마소의 침입으로 인한 봉분의 훼손을 방지하고 봄철 초지의 화입에 의한 피해를 막을 필요가 있었다. 사다리꼴 형태의 겹담으로 축조된 산담에는 제주인의 미의식과 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다. 여름철 강수량이 많은 기후 특성상 경사도에 따라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각형의 형태는 침식을 막아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주변의 오름과 조화를 이룬다.

아래쪽 사각형의 모퉁이는 흡사 한옥의 추녀처럼 끝 모서리를 약간 높게 축조하였는데, 아래쪽을 좀 더 단단하게 하여 돌담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산담의 왼쪽이나 오른쪽에는 죽은 자의 영혼이 드나드는 신문이 설치되어 있고, 묘소를 지키는 동자석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산담까지 포함하는 제주의 묘지는 육지 일반인의 묘지보다 면적도 더 넓고 운치가 있다. 생전에 초가삼간에 살아도 죽어서는 저택을 거느리는 형국이다.

이러다 보니 축조하는 데도 많은 공력이 들어간다. 묘지를 조성함에 친척인 괸당뿐만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합심하여 도와주니 이들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가 되었다. 빚을 내서라도 은혜를 갚고자 하는 미풍이 이어져 내려왔던 것이다.

최근 제주 사회도 화장 문화가 보급되면서 묘지 경관도 바뀌고 있다. 한반도에 비해 유교가 늦게 도입된 제주는 유교적 의례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이어져 내려왔다. 삼년상의 장례문화가 없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으며 매장을 선호하여 화장 비율도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전통적인 묘지를 조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핵가족화,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묘지의 관리도 쉽지 않아 이제는 가족공동묘지를 조성하거나 화장한 후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죽어서도 성냥갑 아파트와 같은 곳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든다. 한라산을 뒤로하고 탁 트인 바다를 보라보며 잠들어 계신 조상님들이 새삼 부럽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