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의 한일관계, 해법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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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근형,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논설위원

1950년대에 미국 젊은이들에게 유행했던 치킨(비겁자)게임이 있다. 제임스 딘이 열연했던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 이 게임이 등장해 더 잘 알려졌다. 당시 미국경제가 급성장하는 덕에 대학생들이 자가용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치킨게임은 서로 마주 보며 달려 먼저 핸들을 꺽는 쪽이 지는 게임이다. 이기기 위해 술에 취한 척하거나 핸들에 손을 묶거나 하여, 나는 절대 핸들을 먼저 꺾지 않는다는 결기를 보인다. 결국 배포가 약한 쪽이 손을 들게 마련이다.

치킨게임은 국제정치에서 국가 간 갈등을 설명하는 게임이론의 하나로 발전되었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는 공개적으로 자국의 입장을 천명하여 절대 변경할 수 없다는 강한 결의를 보이라고 한다. 1963년 쿠바위기 때 당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전 세계인들을 향해 소련 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될 경우, 미국은 소련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강력히 천명함으로써 후르시초프의 양보를 받아 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서로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면, 결국 충돌로 이어져 양측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7월 1일 일본 정부는 한국이 자국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불화수소 등 전략물자의 관리가 부실하다는 이유를 들어, 한국을 수출우대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면에는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에 대한 판결이 작용했음은 몰론일 것이다. 우리 대법원은 개인적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보고, 일본 신일본제철(신일본주금)에 대해 징용공들에게 1억원의 위로금을 주라고 판결했다. 이후 일본은 1100개 품목에 대해 강화된 수출규제 조치를 적용했으며, 우리 정부도 수출우대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한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GSOMIA)도 파기 결정을 내렸다. 이제 한·일 양국은 마주 보며 달리는 치킨게임의 양상을 보이고 있고, 어느 쪽도 절대 양보할 것 같지 않다. 과연 해법은 없는 것인가?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징용공 판결에서 피해자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으나, 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소를 청구할 권능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양국 대법원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른 판결을 내린 데서 발생한 사안이다. 양국 대법원의 판단이 다를 때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가? 최근 제주평화연구원에서 개최된 한일관계에 대한 세미나에서 국민대학교의 이원덕 교수는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해서 판결을 받아보자는 안을 내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매우 좋은 방안으로 판단된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서로가 상대방에 대한 제재조치를 풀고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로가 제재를 해제하게 되면, 양국여론도 점차 가라앉게 되지 않겠는가?

21세기의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바란다면, 한·일 양국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는 공통점은 구하고 차이점은 놔두라는 말로,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가자는 것이다. 한·일 간에는 역사해석의 문제 등에서 차이점이 크나,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해야 할 일도 많다. 일본은 숙명적으로 같이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우리 모두 좀 더 협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해나가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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