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이 총살 당하는 부모님을 몰래 지켜보다 아물 수 없는 상처
그래도 다시 사는 생(生)이 있다면 서귀포, 서귀포에 가서 살자
제주, 4·3항쟁의 피해와 무관한 집안이 있을까. 아버지가 초등학교 일이학년 즈음, 불 질러놓고 도망 가버린 집이 전소되자, 그 길로 할아버지는 고향을 등지고 서귀포로 이주한다. 그 연유,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정방폭포가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있다. 절벽에 기댄 상층의 터줏대감 소나무들과 갖가지 나무들이 한 곳을 본다.
허공에 매달린 나무들은 걱정 탓에 제 목줄 늘어지는 것도 잊는다. 이곳의 아름다움 뒤로 아픈 역사가 있다.
현재의 송산동은 군부대가 주둔했던 토벌대의 거점지로 당시 이곳은 산남 최대의 끔찍한 학살터다.
어느 할머니의 어릴 적, 죄 없이 총살당하는 부모님을 몰래 지켜보다 아물 수 없는 상처, 그 깊이를 무엇과 견줄까. 지난 날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간 선량한 목숨들, 더는 되풀이 말라는 울림이다.
성악가 안창현 님의 ‘카자흐스탄 오페라 <아바이> 중 아리아 ‘칼람카스에게 안부를….’ 감상한다. 이어지는 ‘동심초’로 모두의 가슴이 촉촉해진다.
다시 돌아갈 사람을 가졌다는 위로만으로도// 가장 뜨겁게 오래 피는 마을/ 다시 사는 생이 있다면 그런 생이 온다면/ 서귀포, 서귀포에 가서 살자’
김효선 시인의 시 ‘다시, 서귀포’를 김정희와 시놀이가 춤꾼 박소연과의 즉석 콜라보다. 릴레이 낭송에 무용까지 어우러져 한껏 풍성해진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생이 있다면/한라산은 눈썹 위에 두고/서귀포 물빛은 발아래 두어/노오란 과즙 향기로운 돌담 아래를/느리게 걸어 다니리라//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희망으로//불멸을 구하러 왔다지, 서복/한평생 푸른 바다엔 전복 소라 멍게 해삼/영원한 보물이 그리움인지도 모르고 돌아갔다지/그 넓고 넓은 대륙에서 마음 하나 구하지 못해/서러운 노을로 몇 달을 쓸쓸하게 타올랐다지//천지연 폭포에 귀를 씻어 번뇌를 지우고/새연교 다리를 건너면/어느새 상처도 인연으로 머문다는데/어디서나 너의 이름이 서쪽이라서 살고 싶어진다//다시 돌아갈 사람을 가졌다는 위로만으로도//가장 뜨겁게 오래 피는 마을/다시 사는 생이 있다면 그런 생이 온다면/서귀포, 서귀포에 가서 살자
-김효선 시인의 ‘다시, 서귀포’ 전문
품 너른 바다와 폭포, 섶섬과 범섬은 기억한다. 지난 날 근처의 일거수일투족을 목격한 산증인들이다.
이곳이 아름다운, 지난한 아픔들이 더는 묻히지 않기를 바란다.
빼어난 경관 뒤로 가려져, 제 목소리도 내보지도 못한 채 안타깝게 돌아가신 많은 분들의 넋을 기리는 안내문정도 있으면 좋겠다.
올곧은 역사관은 심어야한다.
사회=정민자
그림=이미선
시낭송=김정희와 시놀이
영상=김성수
사진=채명섭
무용=박소현
성악=안창현
반주=김정숙
호른=황경수
글=고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