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포비아(pho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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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객관적으로 볼 때, 위험하거나 불안한 상황이 아닌데도 죽기 살기로 피하려는 게 포비아다. 놀라움이나 두려움으로 공포를 느끼게 되는 현상이다.

아잇적 검둥이에게 종아리를 물린 경험이 있어 지금도 개만 보면 지레 겁먹는다. 중개만한 놈만 봐도 움찔한다. 노상에서 마주 오면 길 건너 피할 만큼 주눅 든다. 개에게 당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이유 있는 반응으로 동물공포증이다.

비행기를 못 타거나 산꼭대기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높이를 두려워하는 고소공포증이다. 밀실공포증은 좁은 공간에 갇혔던 기억에서, 개방공포증은 거리나 광장 같은 너른 곳에 나서길 불안해하는 데서. 이들을 뭉뚱그려 포비아다.

요즘같이 급변하는 세상에는 신구(新舊) 충돌이 있게 마련이다. 풍속이나 문화가 급격히 허물을 벗는다고 전통이나 옛 문화와 대립해 파장을 부르는 수도 적지 않다. 옛것을 고수하려는 묵은 세대와 창의로 새것을 선호하며 변화에 목말라하는 신세대의 대립 양상이 심각한 소용돌이를 몰고 온다. 전통은 창조하는 것. 그대로 답습하는 건 인습(因襲)이지 진정한 의미의 전통이 아니다.

명절 연휴를 기다려 서울을 공동화하며 천만에 달하는 국민이 귀성한다. 온갖 고생을 각오한 대이동이다. 근원에 대한 그리움은 상상을 초월하게 진하고 짙다. 이런 뿌리를 향한 한국인 고유의 정서적 지향은 세계가 놀라는 것으로 현실이 된 지 오래다. 물밀 듯 흐르는 귀성 차량의 행렬을 바라보노라면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런 중에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생겼다. 일고여덟 시간의 장거리 운전으로 지친 몸이 고향집에 이르러 가족을 만나는 기쁨은 크지만 그도 잠시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 기다린다. 몸 뉠 겨를도 없이 썰고 지지고 볶고 굽고, 제수를 준비하는 와중으로 빠져든다. 가족 간의 정담으로 넘치는 기쁨이 피로를 덜어주지만 일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차례가 끝나면 또 덜미 잡힌다. 산더미같이 쌓인 오만 그릇 설거지. 친족이 많으면 진짜 장난이 아니다. 설거지를 해 내치면 2~3차로 또 들어오니 말뚝처럼 서서 중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체력과 인내를 시험하는, 전선 없는 전쟁이다.

도시에서 내려간 며느리가 질려 갈등을 겪을 수밖에. 도를 넘게 심각한 명절증후군이다. 이게, 경우에 따라 부부간 균열로 이어지기도 한다지 않는가. 명절증후군을 넘어 명절 포비아다. 이런 포비아를 절감하는 사람이 실제 5명 가운데 2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포비아는 증후군을 넘어 두려움이고 공포의 단계다.

명절에 신세대의 반란이 거세게 일고 있어 예사롭잖다. 집안 화합을 위한 명절이 외려 화합을 깬다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듯하다. 명절 풍속이 밑동에서 역풍에 흔들리는 건 아닐까. 어느 가정에선 벌초 때 선산에 절하고 조상님께 양해를 구했다며 연휴에 가족여행을 떠났다 한다. 가족이 화목만 하면, 명절의 목적에 합치하는 그 길이란 해석인가.

추석 차례상에 꽃과 과일만 올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속도에 집착하다 보면 번번이 넘어진다. 속도는 조화를 깨지 않을 때 효율이다. 명절 포비아가 서둘러 일낸다. 어느 쪽이 현명한 선택일까. 몇 년 후 차례를 완강히 주장했다 꼰대의 부질없는 고집이라 웃을지 모른다. 세대 간 소통이 절실한 때다. 명절도 현실을 놓고 따져야 하는 시대가 바로 목전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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