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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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순 수필가

저녁 무렵 옥상에 올랐더니 서녘 하늘이 장관이다. 금빛 광채가 찬란하다. 얼마 만에 보는 저녁노을인가. 이 아름다운 장관을 구경하며 호사를 부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사방에 거대한 건축물들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허물고 세우는 일로 우리의 삶 주변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처음부터 완벽한 건축물들이 들어선 지역에 살았다면 이런 도시 공해는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후회도 해보지만 그런 곳은 어디에도 없으니 소용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짜증이 나는 건 숨길 수 없다.

하긴 내 삶의 주변만 그런 것도 아니다. 도시 전체가 애초부터 완벽한 계획도시가 아니었으니 제 형편에 따라 집을 짓고, 헐고, 재건축하는 일이 거의 제약 없이 이루어졌다. 이제 지역 형편이 나아지니 구조적 배열을 제대로 다스리며 도시의 품격을 갖춰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해는 발전을 위한 역사(役事)의 부산물이다. 그런 차원에서 바라보며 자신을 다스려 나간다면 참지 못할 일도 아니다. 속 좁은 내가 오히려 문제란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저절로 잦아들 스트레스도 아니니 도시의 공해를 피해 가끔 농촌이나 어촌을 찾는다. 주위를 소요하며 눈요기를 하다보면 도시의 삶은 까맣게 잊어버린다. 혹여 내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노후의 보금자리를 꾸몄다 헐었다 하며 상상 속의 신선놀음을 즐긴다.

그런데 농·어촌의 변화는 도시의 변화를 앞지른다. 상전벽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초가집 오순도순 모여 있는 그림 같은 내 고향’은 이제 눈을 씻어도 찾을 수 없는 이상향일 뿐이다. 도시 빌딩에 견줄만한 건물들이 버젓이 들어서고 도시의 문화 시설 못잖은 공간들이 즐비하다. 제주는 이제 도·농간의 구별이 사라졌다. 아늑한 공간에서 노후를 보낼 상상 속의 보금자리 공작도 재미없는 신선놀음이 될 판이다.

문명의 발전은 변화를 수반한다. 그 변화의 속도에는 가속이 붙는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안정기를 맞게 된다. 지금은 우리 제주의 격변기다. 도시의 공해 또한 격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가 짊어지고 넘어야 할 변화에 따른 공해다. 도시의 소음은 우리와 운명적 마주침이란 인식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불평과 불만을 품고 살아가다가는 자신의 몸과 마음만 헝클어진다.

기화요초 만발한 파라다이스나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무릉도원은 우리 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말쑥한 차림으로 손잡고 가는 다정한 부부를 보면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지만 그들도 집에 들면 남들처럼 나름의 삶의 번잡과 고통을 안고 산다. 문제는 그런 삶의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삶의 과정에서 당연히 마주할 수 있는 사소한 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그게 말이나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혹자는 취미 활동이나 여행에 몰입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권한다. 집안에서 가사에 들볶일수록 치유의 강도도 높여야 한다며. 여행이나 나들이에 과감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기다리던 가을이다. 여행이 어렵다면 가까운 들판이나 바닷가로 나가 내면의 응어리를 갈바람에 맘껏 까발려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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