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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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조시인

고교시절, 이른 봄이었다. 마을 공회당에 나무를 심기 위하여 선배들과 나무 캐러 한라산으로 갔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벚나무를 파내기 시작했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땀이 나고 지쳤다. 쉴 때 선배 한 분이 도시락을 펼쳤다. 노란 조밥이었다. 조금 떠먹었더니 사락사락했다. 그래서 모두 먹지 않았다. 그러나 도시락 주인은 잘도 먹었다. 캔 나무를 들고 한참 내려오자 모두가 기진맥진하고, 배도 고팠다. 먹다 남은 조밥을 조금씩 나눠 먹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다.

1970~80년도에도 돼지갈비 한번 먹기도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직장 동료가 돼지갈비를 산다고 해서 몇 모였다. 그런데 초청도 안했는데 체면불구하고 참석한 동료가 있었다. 이럴 땐 눈치껏 누군가에 의해 각자분담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참으로 인정머리라곤 털끝만큼도 없었던 것 같아 씁쓸한 일이었다. 그래서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푸념처럼 투덜대곤 했다.

어쩌다 자주 안 보던 지인과 밥을 먹기로 약속하곤 난감할 때가 있다. 또 다른 지인에게 전화하여 같이 왔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한다. 그래서 뭣 모르고 전화한다. 전화 받은 지인은 다른 사람도 있느냐고 묻는다. 누구라고 하면 둘이만 먹으라고 한다. 한마디로 같이 밥 먹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탁한 지인에게 노골적으로 의사를 전할 수가 없어 바빠서 못 오겠다고 한다며 둘러댄다. 때문에 찜찜한 밥을 먹을 때가 있다.

얼마 전 트론의 창업자 겸 CEO인 저스틴 선은 워렌 버핏과 역사상 가장 비싼 460만 달러(54억원)짜리 점심식사를 한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었다. 버핏이 그간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도박혹은 망상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숨기지 않았던 만큼 이번 식사 자리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소문이다.

근래 들어 모두들 잘 먹고 살아서 그런지 회를 사준다거나 고급 호텔 뷔페식당에 간다고 해도 응하지 않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빚질 필요도 없겠지만, 불편한 사람과 만나 밥 먹고 싶지 않은 까닭이 더 크다. 시대가 변해도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것 같다.

몇 년 전 라디오 방송에서 두 분 진행자 사이에 주고받는 밥 먹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은 적이 있다. 가장 맛있게 먹는 밥은 어떤 경우냐고? 중요한 세 가지만 말해보라고. 3위는 배고팠을 때’. 2위가 공짜로 먹을 때’. 1위는? ‘이 말 저 말하며 뜸들이다 가장 좋아(사랑)하는 사람과 먹을 때라고 말했다. 공감이 갔다. 가장 맛있는 밥은 누구와 먹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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