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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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작품을 읽다 정서법상 오류가 나오면 따분하다. 더구나 내로라하는 작가일 때는 민망하기 짝이 없다. 문학성이 높다 하더라도 한글을 허투루 표기하면 그만큼 글의 품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왜 ‘사랑스런’인가. 기본형이 ‘사랑스럽다’이니 어간의 ‘ㅂ’이 ‘우’로 바뀌어 ‘사랑스러운’이다. 또 ‘자랑스러운’이라야 맞다. ‘아름답다, 곱다, 도탑다’는 ‘아름다운, 고운, 도타운’으로 활용하는 ‘ㅂ 불규칙용언’이다. 유독 ‘~스럽다’만 ‘~스런’으로 쓰는지 납득이 안 간다. 정서법을 무시하는 건 결코 한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허나, 헌데, 허지만’도 그렇다. 국어에 ‘하다’는 있어도 ‘허다’는 없다. 또 고상한 말도 아니다. 일부 작가의 그릇된 언어습관에서 비롯된 잘못이다. ‘구어체 운운’하는 억지에 매달릴 게 아니다. ‘허거니와, 헐 수 없다’까지 가는가. ‘하거니와, 할 수 없다’로 쓰면 그만이다. 굳이 ‘음성모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서울말이 음성모음을 선호해 ‘앉어, 막어, 받어’로 말하는 것과 다르다. 이들도 ‘앉아, 막아, 받아’로 적는다.

무심결 잘못 쓰는 말이 또 있다. ‘너무’다. ‘넘다’에 접미사 ‘우’가 와 부사로 전성된 것으로 ‘자주(잦다 우)’와 똑같은 조어(造語)다. 뜻은 ‘정도에 지나치게’다. ‘너무 빨리 달린다, 문제가 너무 어렵다’처럼 쓴다.

이 말이 실제 언어생활에서 잘못 쓰는 예가 많다. ‘너무’ 뒤엔 부정적 용언이 온다고 보면 좋다. ‘어둡다, 적다, 불쌍하다, 서럽다, 인색하다, 속상하다, 늦다, 멀다, 작다, 아프다, 기울다…’ 이들 앞에 써 보면. 퍽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헷갈리는 게 ‘너무’다. ‘너무 예쁘다’는 적확한 표현이 아니다. ‘예쁘다’에 지나치게 예쁘다는 예의가 아니잖은가. ‘너무 뛰어나다, 너무 용감하다’도 매한가지. ‘너무’를 빼고 대신 ‘아주, 참, 매우, 퍽, 대단히’를 넣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리라. ‘아주 뛰어나다, 매우 용감하다.’

승부차기를 하는데 ‘너무 잘 찼다’도 이상하다. ‘아주 잘 찼다’라야 한다. 연인 사이에 ‘너무 사랑한다’도 그렇다. 사랑의 감정이 지나치다는 제약은 좋은 게 아니다. ‘매우 사랑한다’라는 고백의 말이 순리다. ‘기쁘다’도 ‘너무 기쁘다’가 아닌 ‘대단히 기쁘다’가 맞다.

감정의 과잉을 표현할 때 무조건 ‘너무’를 갖다 대는 건 ‘너무’한 것이다. 정도를 넘을 때, 감정을 조율하면서 ‘너무’ 대신 ‘아주, 참, 매우, 퍽, 대단히’를 써 마음을 추스르면 아주 좋다. 감정의 과다노출을 조절하기 전, ‘너무’를 ‘너무’ 잘못 쓰고 있어 하는 말이다.

수필가는 국어의 파수꾼이다. 바른 말을 골라 쓰면서 진정 국어를 사랑하는 작가 군(群)임에 틀림없다.

작은 글방이 있다. 어느 날 내 발표 작품에 ‘공 든 탑’이란 말이 들어 있었던가. 정복언 수필가에게서 메일이 왔다. “선생님, ‘공 든 탑의 공 든’은 한 낱말이라 붙여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그만 눈 밖에 있었다. 단박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맞아요. 한 낱말로 굳어 버린 합성어가 맞아요. 붙여 써야 해요.” 우린 글방에서 만나 밝게 웃었다.

정 작가는 수필을 ‘너무 사랑한다.’ 아니다. ‘수필을 매우 사랑한다.’라야 한다.

며칠 뒤 한글날이 다가오니 무심할 수 없었다. 글 한 편 또 써야겠다. 연장도 ‘너무’ 안 쓰면 녹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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