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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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BHA 국제학교 이사, 시인/수필가)

경쾌한 알람 소리에 잠이 깬다. 새벽 4시다. 뒤척이다 집을 나선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으나 일상에 젖은 몸이 벌써 신작로를 지나고 있다. 신호등을 건너니 경찰관 두 분이 약국 건물 옆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누워 있는 젊은이를 일으키려고 애쓰고 있다. 청년은 인사불성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 경찰관들도 일어섰다 앉았다 안절부절한다.

바로 옆 건물 현관엔 지팡이를 벽에 걸어 두고 할머니 할아버지 너댓 분이 좁은 공간에 겨우 비를 피하며 앉아있다. 신경외과 건물이다.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일찍 나와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진료를 시작하려면 여러 시간 기다려야 할 텐데 오랜 시간 시멘트 바닥 위에 앉아 있으니, 오히려 건강을 해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한 불럭 지나자 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다. 가까이 가보니 희미한 조명 아래 이층에서부터 계단을 따라 사람들이 빼곡히 줄지어 서거나 앉아 있다. 피부과 의원 건물이다. 족히 이삼십 명은 되어 보인다. 벽에 기대어 졸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친구들과 담소하고 있다. 10대 젊은이로부터 나이든 남자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궁금해 물어보니 미용 진료를 받기 위해 서로가 순번을 정해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매일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소위 피부 리모델링 공사를 위한 수고의 한 과정이리라. 나도 이 의원에서 몇 년 전 얼굴에 점을 몇 개 뺀 적이 있는데 한 6개월도 더 전에 예약을 했던 기억이 있다.

메마른 소리로 컹컹거리는 강아지 두 마리를 뒤로 하고, 동네 목욕탕으로 들어 선다. 벌써 런닝 머신은 연로하신 분들로 가득 채워졌다. 눈치 보며 몇 가지 근력 운동 기구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샤워를 하고 나온다.

여섯시가 채 되지 않은 거리는 아직 미명에 지척 분간도 쉽지 않다. 취기에 젖은 서너 명의 젊은이들이 포효하며 새벽 거리를 휩쓸고 있다. 서로 엉켜 쓰러질 듯 군무를 그리며 지나간다. 갑자기 한 여자가 핸드폰으로 여보, 나 지금 가고 있어!” 외치며 앞서 간다. 그런데 걸음걸이는 지그재그다. 대여섯 명의 검붉은 외국 노동자들은 백색을 하나씩 매고 잰걸음으로 정류장을 향하고 있다. 낯설고 힘들지만 코리언 드림을 꿈꾸며 일터로 가는 듯하다.

동네 어귀로 돌아 서면 집 방향이다. 두어 해 전 들어선 아파트촌으로 한라산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인력 개발 센터 앞에 사람들이 모여 섰다. 실내에도 10여명 자리를 잡고 있다. 믹스 커피향이 정겹다. 여기저기서 담배 연기가 오늘의 희망처럼 뭉개뭉개 피어오르고 있다. 유난히 키가 큰 그 분은 오늘도 처마 밑을 지키고 있다.

몇 걸음 더 나가자 침샘을 자극하는 고등어 구이 냄새가 코끝을 유혹한다. 배달 음식 전문점이다. 이른 아침부터 도시락 만들기에 무척 바쁜 듯하다. 서툰 한국어와 익숙한 중국어가 그래도 잘 소통되고 있어 보인다. 어느덧 집 앞이다. 누군가 밤새 흘린 캔, 종이컵, 담배 케이스와 꽁초, 낙엽과 전단지 등이 길가에 너부러져 있다. 무척 게으른 나지만 오늘은 빗자루를 들어 본다. 어설프게 정리된 주변을 보니 그래도 기분이 조금은 깨끗하다.

현관에 이르니 그 새 불이 켜져 있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안해’(이북에서는 아내를 집안의 태양이라는 의미로 안해라고 부른다)의 그림자가 창 너머로 넘실댄다. 봉사활동 하는 날이라 밥 짖고 도시락도 싸기에 분주하다.

오늘 아침도 나의 자기 중심적 행위와 합리적 사고를 관습적으로 성찰해 본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제 자리에서 제 일을 잘 찾아 바르게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린 불안한 평화 속에 위태로운 자유를 내딛으며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나는 아이들, 활기찬 젊은이들, 행복한 어르신들을 위한 세상은 이제 바로 저 고개 너머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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