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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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국장

사회복지협의회에서 15년을 근무하면서 생긴 욕심이 있다. 다름 아닌 ‘제주사회복지역사’를 찾고 정리하는 일이다. 언젠가 그 욕심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리라 기대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바심만 생긴다.

수년 전 뜻을 같이하는 지인과 함께 사회복지 원로에 대한 영상 인터뷰 자료를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해 사회복지법인 농애원의 오원국 전 이사장의 인터뷰 작업을 마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오원국 이사장의 타계 소식은 ‘이러다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후회를 하겠다’ 싶은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다. 그래서 일단 원로들의 이야기라도 수집해야겠다는 생각에 ‘제주 사회복지인을 조명하다’라는 제목의 원로 인터뷰 기사를 ‘제주사회복지신문’에 연재했다. 선배들에게서 말로만 듣던 원로들과 나름 현장의 경력이 있는 분들을 찾아뵙고 그동안 걸어오신 길에 대해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받아 적고 그대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매월 한 분씩, 어떻게든 이어 가보려 했는데 열 두 분의 이야기에서 그친 채로, 다시 시작할 시기를 엿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제주지역에 처음 자리 잡은 ‘사회복지 1호 시설’ 13곳을 찾아 기념현판을 부착하는 사업도 했다. 지금은 인터넷상에서라도 제주사회복지역사를 정리한 ‘온라인 역사관’을 개설해 보려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다급한 마음에 욕심만 앞서 체계적으로 작업을 진척시키지 못해 속상하기만 하다. 괜한 일에 손을 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지금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제주는 70여 년 가까운 대한민국 민간 사회복지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1·4후퇴를 앞둔 1950년 12월 20일 미 공군 딘 헤스 대령이 1000여 명의 전쟁고아를 수송기 15대를 동원해 제주도에 피신시키고 이 아이들이 1951년 3월 설립된 ‘한국보육원’에서 보호 받았다는 기록부터 4·3과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보살피던 ‘명진보육원’에 대한 기록은 시간 속에 묻혀 점점 퇴색해 가고 있다.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제주까지 피난 온 농아학생과 시각장애학생이 서로의 눈과 입이 되어 지금의 산지천 인근에서 피난생활을 했다는 이야기 또한 원로들의 증언으로만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이뿐이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숨어 있는 이야기와 흔적들이 곳곳에서 소리 없이 지워지고 있을 게 아닌가.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복지역사 속 제주의 가치도 빛바래져 가고 있다는 얘기다.

공동체 정신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수눌음 정신을 근저로 의인 김만덕을 낳고 국가폭력과 전쟁으로 고통 받은 이들을 보듬고 감싸 안은 ‘복지 성지’로서의 제주의 위상과 가치를 회복시키는 일은 오직 ‘기록’뿐이다. 그 ‘기록’은 훗날 복지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순례 행렬을 이끄는 길잡이가 될 것이고 오늘을 살며 내일의 제주복지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선배들의 헌신과 희생에 보답하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요즘 사회복지현장에서는 내년 계획수립이 한창이다. 바라건대, 각자의 현장에서 기록되어야 할 것들을 찾으려는 의지들도 그 안에 담겨져 있었으면 한다. 그런 의지들이 한데 모아질 때 ‘제주사회복지역사’가 제대로 정리될 수 있으리라. 우리 스스로 기록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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