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밥 먹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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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입맛이 변했다고 느끼고부터다. 내가 하는 반찬이 입에 당기질 않아 색다른 맛을 탐하게 된다. 매일 TV에서 맛집이라고 부추기는 것도 한몫을 한다. 식도락까지는 못 돼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즐거움이다.

일주일에 두어 번 점심은 밖에서 해결한다. 세끼를 주방 일에 매이는 게 벅차다. 변명 같지만 적당한 게으름도 휴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동네에서 간단하게 때우거나, 바람도 쏘일 겸 멀리 나갈 때도 있다. 분위기에 따라 진지한 대화거리가 생기는 일도 있어 좋다.

부담 없어 편하고 즐거운 자리는 한 달에 몇 번, 시동생 부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오름을 오르거나 휴양림을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눈다. 숲을 벗 삼아 걷노라면 마음의 거리가 한 뼘쯤 더 가까워지는 걸 느낀다. 달착지근한 피곤을 안고 마주 앉아 먹는 점심은 별미다. 음식이 맛있어 좋고, 함께해서 더 좋으니 이것도 복이 아닌가 한다. 해 다르게 변해 가는 모습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동기간의 우애가 오랜 친구처럼 임의롭다.

같이 밥을 먹는 게 단순히 먹는 의미만은 아니다. 서로 건강을 살피며 집안일이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오간다. 뜻과 생각이 다를 수 있으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대화를 나눈다. 자기만 옳다고 우기지 않고, 결론은 각자의 몫으로 여지를 남긴다. 다소 불만이 있다 해도 이미 끝난 일에 옳다 그르다 거론하지 않는다. 각자 가정을 이끌며 살아온 경륜도 그렇고 나이 듦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크다. 막걸리를 앞에 놓고 주거니 받거니 형님, 아우하며, 사는 날까지 이렇게 살다 가자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심전심 곁에서 지켜보며 동서와 나도 뿌듯한 눈길을 보내곤 한다.

매일 서울에 있는 동생과 전화가 오간다. 어머니에게 할 수 없는 얘기며 남편에게조차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미주알고주알 속을 털어내고 나면 기분이 가볍다. 스스럼없는 친구 같은, 언니처럼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동생이자,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응원자다. 또 한 사람은 제주 토박이 손아래 동서다. 처음 제주 생활은 마음 붙이기 힘들었다. 겉돌기만 하는 나를 세심하게 살펴 이끌어준 후덕한 사람이다. 동서가 제주를 비우게 되면, 주위가 텅 빈 것 같이 허전할 정도다.

곁에 좋은 친구와 이웃을 두었다면 삶이 한결 윤택하다. 재물도 소중하지만, 요즈음 들어 부쩍 가슴에 닿는 말이 있다. 귀한 이를 가진 게 그 못지않다고. 그런 관계가 어긋날 경우는 큰 재산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일 어려운 일은 불편한 사람과의 관계 회복이다. 어렵지만 관계 회복은 나를 딛고 일어설 용기가 필요하다. 엉클어진 실타래 같아 변화무쌍한 마음의 갈피는, 시간이 흐를수록 골만 깊어진다. 되도록 오래 두지 말고 풀어야지 피차간 독이다.

서먹한 사이를 부드럽게 풀기 위해 함께 밥을 먹으라는 말이 있다. 물론 대상에 따라 음식 맛이 다를 수 있다. 어색한 자리에서 진수성찬인들 무슨 맛이 있을까마는, 갈등의 끈이 풀릴 기회가 되지 않을까. 불편해 쓰디쓴 입맛도 맛있는 밥 먹듯 삭이며 사는 맛, 복잡한 세상을 사는 지혜가 될 수 있겠다.

곧 세밑이다. 연말을 구실 삼아도 좋다. 눈 질근 감아 자존심 한쪽으로 밀어 놓고 “우리 같이 밥 먹을까요.”라고. 내친김에 함께 해맞이를 하며, 새해 덕담을 나눈다면 마음도 홀가분하고 복이 저절로 굴러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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