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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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저의 기억은 파편화 돼 진술하기 어렵습니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36)은 기억이 파편처럼 조각조각 흩어져 범행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수사 과정에서 고유정의 진술이 오락가락했거나 진술을 거부한 이유다.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열린 지난 6·7차 공판. 고유정은 흉기로 전 남편의 목과 어깨 부위를 ‘한 번’ 찌른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펜션 내부에서 피가 묻은 흉기로 수 차례 찌르는 과정에서 생겨난 흔적(정지이탈 혈흔)이 다이닝룸에서 9곳, 주방에서 5곳, 현관 손잡이에서 발견돼 고유정은 최소 15차례 피해자를 공격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한 번 찌르고 현장에서 도망쳤다면 찌른 부위를 기억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시신을 욕실로 끌고 가 손괴(훼손)하면서도 ‘한 번’ 찌른 부위를 모를 수 있느냐”고 따졌다.

고유정은 전 남편의 성폭행 시도로 우발적으로 범행(살인)을 저질렀다고 줄곧 진술했다. 검찰은 전 남편이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을 먹었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했다는 가정은 성립되기 어렵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7차 공판에서 고유정은 “제가 먼저 찔렀고, 그 다음에 그 사람(전 남편)이 칼을 다시 쥐고 있었다”고 했다. 검찰은 “(우발적 범행이라면) 흉기가 왔다 갔다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6차 공판에서 지난 5월 25일 범행 추정시간(오후 8시10분~9시50분)에 펜션 주인과 세 차례 통화한 음성을 공개했다.

아들(6)은 고유정의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는 중에 펜션 주인을 바꿔줬다. 고유정은 “엄마는 물감놀이를 하고 왔어. 먼저 자고 있으면 청소하고 올게”라며 아들에게 둘러대는 내용이 펜션 주인과의 통화에 남아 있었다.

고유정은 전 남편이 성폭행을 하려 했기 때문에 펜션의 가장 안쪽에 있는 다이닝룸으로 피했고, 우연히 잡힌 칼로 피해자를 한 차례 찌른 뒤 현관으로 도망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긴박한 상황이 벌어진 후 펜션 주인과 통화하면서 구조요청을 하지 않은 점과 통화 중에 시종일관 상냥하고, 감사의 인사까지 전한 통화 음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고유정은 ‘무인 펜션’을 예약하면서도 주인에게 “저희만 쓸 수 있느냐, 주인분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니지요?”라며 모순되는 질문을 했다.

고유정은 졸피뎀(수면제)을 카레라이스에 넣지 않았고, 전 남편은 먹지도 않았다고 진술했지만, 아들은 피해자와 둘이서만 카레라이스를 먹었고, 고유정만 먹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망치와 핸드믹서기를 구입했고, 차량 트렁크에서 목공용 테이블 행태의 전기톱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는 김포의 아파트에서 시신을 추가 손괴하기 위해 주문한 것으로 봤다.

검찰은 평소에 김장을 해본 적이 없는 고유정이 도내 한 마트에서 배추 15포기가 들어가는 김장용 대형 비닐팩 4매를 구입했고, 제주를 떠나기 전 20매를 추가로 구입한 후 차량에 7매가 발견됐다고 했다. 이어 표백제와 락스, 테이프, 고무장갑, 종량제봉투 등을 범행이 아닌 직접 필요한 목적에 쓸 거라면 굳이 반품해 환불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제주에 오기 전 ‘졸피뎀’, ‘호신용 전자충격기’, ‘니코틴 치사량’, ‘뼈의 강도·무게’ 등을 검색했다고 했다. 검찰은 고유정의 주장대로 의도하지 않게 정말 우연히 이런 내용을 검색했다면 피고인은 미래에 일어날 일(우발적 살인)을 예시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피해자의 시신을 6개월째 찾지 못한 유족들은 한이 맺혀 있다. ‘시신 없는 살인’ 역시 고유정의 파편화된 기억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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