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우리가 사랑해야 할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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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우리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자연은 예술의 무한한 원천이기도 하다. 개인의 시각이나 감정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상상력은 자연에서 많은 풍경을 표출해낸다.

현대 회화의 아버지 세잔은 “예술가는 자연이라는 위대한 작품이 간직한 신비를 받아들이고 다른 영혼들에게 이 열정을 전달하는 데에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개개인의 영혼의 소유자다.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늘 자유롭기를 희망한다.

자연적인 풍경은 눈앞에 펼쳐진 자연 상태에 사람의 감정이 개입된다. 비가 내리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게 되면 때로는 눈물처럼 슬픔이 덧씌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아련하게 흔들리는 기억같이 희미해졌다가 곧 사라지기도 한다. 순간적인 자기감정이 풍경 속에 녹아드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사람이 행복한가는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가? 즉 자연을 보고 얘기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계절마다 활짝 피는 꽃에, 숲 속 오솔길에도, 바람 부는 산자락 아래에도, 숨죽인 바다에도, 그리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구름에게도 우리의 언어가 있다.

화가에게는 그 언어가 아름다운 색채가 되고, 시인에게는 시가 되고, 또 작곡가에게는 리듬이 되기도 한다. 사람마다 자기식대로 마음의 프레임을 가지고 자신의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또 자연적 풍경과 더불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풍경도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이루는 문명의 일상이 사회이며, 그 사회는 활기차고 끈끈하게 부대끼며 역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샤갈은 세상을 사랑으로 보았다. “우리들의 인생에는 화가의 팔레트에 놓인 것 같이 인생과 예술의 의미를 보여주는 유일한 색채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색입니다.”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색이 바로 사랑임을 강조하였다.

자연의 풍경화를 싫어했던 모딜리아니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눈앞에 직접 볼 수 있는 살아있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고 하여 현실을 생생한 생명력과 마주한다. 프리다 칼로도 소중한 것이 자신의 삶이였기에, “나는 내가 처한 현실을 그려낼 뿐이다.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삶이여 만세!).”라며 살아가야 할 삶을 칭송하였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의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박수근은 동네 어른들, 빨래터의 아낙네들, 시장 사람들, 놀이하는 아이들 등 평범한 인간들의 삶의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결국 우리는 자연 풍경과 사회 풍경이라는 한 풍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연이 주체가 되면 사회는 그 자연의 배경이 되고, 사회가 중심이 되면 자연은 그 사회의 부분이 된다. 그래서 풍경은 자연과 사회를 동시에 아우르는 시대의 삶과 연관된다. 자연은 사람의 마음을 통해, 사회는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두 가지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다. 풍경을 보는 것도 우리 삶의 한 풍경이기에, 그것이 어떤 언어로 표현되든 진정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인간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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