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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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나무는 아무 곳에나 뿌리를 내린다. 야산이든 냇가든 계곡이든 깎아지른 벼랑이든, 어느 집 울안 정원수로도 서 있다. 험하고 박한 곳도 있고, 평탄하고 온화한 곳 비옥한 땅도 있다.

나무는 태어나기 위해 지금의 자리를 선택한 적이 없다. 고목 아래 내린 씨앗이 혹은 새의 배설물로, 산을 넘는 바람이, 흐르는 물이 내려준 터전이다. 태생이 운명적이다. 그렇게 얻은 생명이라 나무의 삶의 양태는 실로 다양하다. 뿌리 내린 곳 환경이 같을 수 없으니 천차만별이다.

대부분 제공된 환경이 야성을 키운다. 높직한 산마루라면 탁 틘 시야에 신선한 공기와 드나드는 새소리에 시간 가는 줄을 잊고 살 것이지만, 험산준령의 벼랑이면 한겨울 폭설에 수난을 겪을 테다. 계곡이라면 흐르는 냇물에 목축이고 싱그러운 숲 그늘에 몸을 놓아 하루하루가 흥겨울 것이며….

운명이지만 쾌적하게 뿌리 내린 곳은 울안일 것이다. 정원수는 평생을 호사 속에 윤택한 삶을 누린다. 호스를 들이대어 목마름을 풀어주고 흙을 북돋아 주는 손길에다, 폭우에 쓸리지 않고 폭풍한설에 얼지 않게 하늬를 막아 주는 높직한 울타리가 있다. 나무에게 이에 더할 삶의 탄탄한 기반은 없다. 정원과의 인연은 필연일까.

12월, 이제 겨울이라 마음 잔뜩 스산한데, 코끝으로 와 폐로 스며드는 산소가 어제의 것이 아니라 몹시 낯설다. 차가운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가며 오장육부가 번쩍 깨어난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서 문득 겨울 속의 나무를 떠올린다. 저 적나라해진 낙엽수들, 그들의 생존 방식은 무엇일까. 옷 위에 두툼히 껴입고 머리 싸고 목 두르고 장갑 끼고도 춥다 투덜대는 사람에겐 나무의 겨울나기가 궁금할밖에.

퍼뜩 지난가을 난폭했던 태풍의 장면을 떠올린다. 링링·타파·미탁. 그것들이 사람의 영역을 강타했다. 길이 동강나고 집이 주저앉고 농작물이 떠 내렸지만, 가로수 몇 그루 뽑혔을 뿐 나무는 무사했다. 나무는 바람에 맞서지 않았다. 앙가슴으로 받아들여 제 몸을 흔들며 비바람 속에 서 있었다. 휘청거림으로 중심 잡는 몸짓이 유연했다. 와중에 나는 난리를 견뎌내는 나무의 그 생존 방식을 목도했다. 색달랐다.

겨울도 저렇게 나리라. 낙엽은 겨울을 날 마련인 대로 그 실현이었다. 들에서 골짝에서 냇가에서 산등성이에서 비탈진 자드락에서 겨울나무는 숨죽이며 봄을 기다린다. 서 있는 곳이 어디든 그들에게 기다림은 설렘이고 꿈이다. 기다림이 있어 겨울도 그들을 쓰러뜨리지 못한다.

나라가 겨울나무처럼 힘들어 보인다. 광야에 홀로 선 듯 외롭다. 엄동설한 앞에 선 한 그루 나무같이 사방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에 허우적댄다. 머잖아 폭설이 덮일 것이고 영하의 기온이 몸을 얼게 할지도 모른다. 발칙한 것, 늘 오던 새도 종적을 감추면 겨우내 적막할 것인데 어찌할까. 이웃들, 섬은 과거도 잊은 척 염치불고 하고, 뭍은 그 덩치에 만날 저울질이다. 해묵은 벗마저 눈앞의 이득에만 눈 밝히고 우리의 다른 한쪽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 겨울, 나라가 갑자기 얼어붙을 것만 같다. 하지만 기상은 늘 가변적이다. 흐린 뒤 개고 춥고 나면 따습다.

서둘러 겨울나무로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혹한 속세서도 겨울을 나는 나무의 생존법이 있다. 끝까지 나무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 나무로 서 있으면 그 앞으로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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