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걱정에 등 굽은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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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산천단(下)
산천단 곰솔은 육지부 소나무와 달리 해송·흑송 이름도 있어
세월 탓일까…기둥의 밑둥에서 허리춤까지 골다공증 증세가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 있는 천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올 때 큰 나무 위에서 잠시 머물며 쉬다가 내려온다고 믿었다. 마을 사람들 역시 큰 곰솔은 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통로쯤으로 여겨 이런 나무가 신성시되어 더 잘 보호되어온 연유다. 쭉쭉 뻗은 나무들을 보며 바람난장 가족들도 소원을 빌어본다.

한라산신제단은 산천단, 효림단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천숭배 사상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온 산천단 곰솔은 연륜만큼이나 개성이 독특하고 이곳의 제단을 둘러싸고 있어 가치도 높다. 특히 육지부의 소나무와 달리 해송, 흑송이란 이름도 더 갖고 있다.

예전의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 있는 천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올 때 큰 나무 위에서 잠시 머물며 쉬다가 내려온다고 믿었다. 마을 사람들 역시 큰 곰솔은 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통로쯤으로 여겨 이런 나무가 신성시되어 더 잘 보호되어온 연유다.

이미선 作, 치유의 정원.
이미선 作, 치유의 정원.

이곳의 등 굽은 큰 곰솔의 꼭대기를 보는 데도 목을 치켜들어야만 할 정도다. 반면에 차츰 더 굽어 휘어지는 등판 쪽을 살펴보다 가여움이 커진다. 이끼 낀 가지 한 쪽 기둥의 밑동과 허리춤까지 골다공증에서 발현된 부위가 매우 심각하게 도래한 작금이다. 병세를 환기시키려 조율하던 손길의 흔적들도 엿보이나 조금 더 일찍 대처했다면 하는 아쉬움만 커진다.

문득, 몹시 추운 날을 대비해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위한, 밑동과 허리춤마저 살점 다 비워내고 널따랗고 아늑한 터널인듯한 무료 제공하는 거처만 같다. 타자를 위해 마련해둔 배려의 공간이라면, 하는 엉뚱한 발상을 해보다 뜻 모를 따뜻함이 이 빈 공간 안으로 휘돌아들어 확산된다.

굵직한 가지마다에서 불거지는 곰솔단풍이 비워낼 자리에 또 다른 희망을 껴안기 위해 불사르는 중이란 생각으로 바뀌니 더 의연하게 다가온다.

 

뜸한 것은 꺼진 불씨와 같아

낯선 길처럼 돌아가던 나를 바라보던 때부터

아프다고 이제야 기억을 들춘 나무가

먼 곳 마음 닫은 창가에 와서

 

시낭송가 이정아님이 곰솔, 산천단을 찬찬히 낭송한다.

 

거북 등, 쩍 갈라지는 소리를 타전한 나무에 닿아

한때,

휘파람 불며 나를 매일 불러들이던 나무

나이테 그리며 사랑하는 동안 그만,

갈라진 가슴 보여주고 말았다

뜸한 것은 꺼진 불씨와 같아

낯선 길처럼 돌아가던 나를 바라보던 때부터

아프다고 이제야 기억을 들춘 나무가

먼 곳 마음 닫은 창가에 와서

엥엥, 노파의 죽는 곡소리를 내며 상처의 소리 낸다

나무, 다녀간 밤은 생시처럼 내 입술이 갈라지고

-김병심의 곰솔, 산천단전문

 

시낭송도 감상했으니 해맑은 오카리나의 연주도 청해 들어본다.

오현석 님의 오카리나 연주다. ‘겨울나무’ 연주를 감상하다 종지부에서 뜻하지 않은 애드리브로 박수 세례가 터져 나온다.

오현석 님의 오카리나 연주다. ‘겨울나무연주를 감상하다 종지부에서 뜻하지 않은 애드리브로 박수 세례가 터져 나온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연주 후 앵콜곡엔 헝가리 집시들의 음악인 챠르다시연주로 온갖 새들마저 끼어들기에 주저함이 없다. 저들의 친구가 온줄 아는지 수런거린다.

알듯 모를 듯한 노송의 표피 곳곳으로 난 틈이 성글다. 그 표피 사이로 깃들고 싶어 하는 것들을 위해 온통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격으로 대장부다운 마음씨이다. 한 울타리 안에 고만고만한 이웃들이 깃드는 연유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열어놓은 문턱, 공생의 길 모색은 가히 본받을 만하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바람난장인 날 하루만이라도 이곳의 곰솔나무들이 그간 받아온 상처에서 해방되길 기원해본다.

이곳 곰솔들은 그동안 보호수이자 지킴이 나무로 늘 푸름의 상징처럼 자리매김 된 터다. 더욱이 제주의 안위까지 걱정해주던 나무가 아닐까. 여기저기서 자리까지 내어주는 과정에 더 둥글어지던 모습을 엿본다.

닮은 듯 아니 닮은 곰솔들의 표피는 어쩌면 제주 사람의 과거에 숱하게 받아온 상처의 상흔만큼이나 아직도 버거운 존재인지 모른다.

그 표피마다 틈새 열어놓으니 깃드는 것들이 생겨나 더욱 돈독해지고, 되레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 더 많아지는지 것 같다.

곳곳의 노거수에서 앓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상처 깊은 등허리로 바람 길마저 온통 내어주고 무방비 상태다. 누구라도 거침없이 드나들라고 선심 쓰듯 내놓은 공간인지 모른다. 오래전부터 한 땀 한 땀 자로 잰 듯 세필로 예비하던 새 솔잎들의 정교함이 자칫 무색해질까 걱정이다.

 

사회=김정희

사진=채명섭

영상=김성수

그림=이미선

성악=윤경희

시낭송=김정희와 시놀이(이정아/이혜정)

소금연주=국악단 가향(전병규/현희순)

오카리나=오현석

음향=고한국

=고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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