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신은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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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BHA 국제학교 이사, 시인/수필가

이 노래의 주인공인 박 선생님 자리에서 일서서 주십시오. 옆에 앉으신 사모님도 함께 일어서 주십시오.” 청중석 앞 쪽에서 연로한 부부가 주섬주섬 일어서서 뒤돌아보며 청중에게 인사한다.

작곡가는 조금 전에 해후라는 창작 가곡을 소개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40여년 전 대학 2학년 때 군대 갔던 친구가 산사를 찾아 왔었다. 마침 철학과 다른 후배와 함께 있을 때였다. 친구는 술에 취해 그토록 믿고 사랑했던 여친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며 고통스러워했다. 철학과 후배는 그들의 고통스러운 이별을 즉석에서 시로 옮겼고, 작곡가는 바로 노래로 만들었다. 후일 철학자는 독일에서 박사가 되었으나, 일찍 귀천했다. 40년이 흐른 친구는 중등 교장으로 퇴직하고 부인과 함께 바다 건너 이 창작가곡 발표회에 참석한 것이다. 작곡가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는 현재 부인이 전혀 모르는 얘기라는 말을 덧붙인다.

작곡자와 나는 초임 교사 시설 시골의 한 중학교에 함께 근무했었다. 총각 선생님들이 유난히 많았던 우리 학교는 마치 한 집의 여러 쌍둥이 형제들처럼 함께 어울리며 세월 모르게 행복한 방황의 나날을 보냈었다. 함께 먹고 마시며 배회했고, 불확실한 젊음의 미래를 제멋대로 해석하며, 몸은 함께 마음은 따로 가고 있었다. 방학 땐 배낭과 텐트를 매고 전국을 여행했다. 이번 노래 중에는 앞산을 바라보며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그 시절 대구 앞산에서 노숙하며 옻닭을 먹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나도 이 시절에 산으로 바다로 들로 다니면서 몇 개의 시를 썼고, 작곡가는 또 서툰 글에 멋진 곡을 붙여 함께 부르곤 했었다. ‘대지(大志)’, ‘영실(靈室)’, ‘가난히같은 곡들이다.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꿈 많은 아이들에게도 새로이 작곡된 노래들을 함께 배워 익히곤 했었는데, 오늘 창작가곡 발표회에도 귀여웠던 제자들 얼굴이 여기 저기 비쳤다.

그 때 나는 이미 친구 작곡자의 해후(邂逅)’라는 노래를 알고 있었다. 작곡 동기도 들었다. 노래도 배워서 가끔씩 혼자 부르며, 그 정감어린 서러운 노래에 빠져들곤 했었다. 가사 일부는 다음과 같다.

길가에 노란 잎 새 질 때, 내 마음 잎 새처럼 물들고, 눈길로 주고받던 사랑 눈물이 앞을 가리내. 친구와 마주 않아 함께 지난 이야기로 지냈네. 사랑이 여울치던 날을 눈물로 손을 잡았네. 바람은 불어 가슴을 치고, 내 눈물 마르는 날들 돌아와 그대 날 찾는다 해도, 젊음이 가니 아! 나는 어찌할 건가!’

가을의 마지막 날 몇 장 남아 떨고 있는 낙엽이 노래 소리에 맞춰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있다. 남친이 그 젊은 날에 입대를 하면 홀로 남겨진 여친은 힘겨운 세월과 싸우면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과 날로 성숙 해가는 자신을 억제하여, 굴래 속에 자신을 가두며 살기란 참으로 힘들고 때로는 가혹한 선택이 되기도 할 것이다. 신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젊은이의 숭고한 권한이며, 또 이를 존중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거꾸로 신는 군화도 너무 많다니 젊은이의 삶은 항상 어려운 선택의 첩첩 산중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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