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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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전애 변호사·논설위원

얼마 전 제주지방법원에서 화해권고위원으로 재위촉되었다. 화해권고위원은 소년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합의와 조정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필자는 변호사 사무실 개업 전, 제주도교육청에서 2년간 학교폭력 사건을 담당했었다. 이번 소년사건 화해권고위원 위촉식에 참석했다가 도교육청 근무 당시 느꼈던 부분들이 새삼 떠올라 이 글을 써본다.

처음 학교폭력 사건을 맡았을 때에는 그저 어린 아이들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생각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에는 사건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 사건들이 쌓이며 나름의 공통점들이 보였고 또한 그 처리 과정에서 왜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도교육청에서 신경을 쓸 만큼 심각한 학교폭력 사안은 대부분 소위 결손가정이라고 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당사자였다.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해보았다. 아마도 아이들을 신경 써 줄 보호자가 있다면 일이 커지기 전에 ‘합의’를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합의를 못 본 아이들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가해자 기록이 남고, 법원에서 소년사건으로 재판을 받으면 그 역시 수사경력자료에 남게 된다.

이 아이들은 대학입시에서도 취업에서도 불리해질 수 있다.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부모가 합의를 봐서 기록이 없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출발선이 다른 것이다.

매년 발표하는 통계자료에서 제주는 늘 전국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제주 여성들의 사회 참여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제주의 4대보험 가입율이 전국 최하위이고 소득수준 역시 최하위인 것을 생각하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혼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이혼은 이혼 후 아이를 조부모에게 맡기고 부모는 각자 제주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발생하는 조손가정이라고 부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들은 부모가 양육하는 아이들에 비해 보호정도가 낮아진다.

가난으로 인한 이혼, 이혼으로 인한 자녀에 대한 무관심, 무관심 속에 자란 아이의 사회 부적응, 사회 부적응자에 의한 사회적 문제 발생. 학교폭력 이슈가 아이 개인의 일탈이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이고, 학교폭력 사안이 처벌위주로 가서는 안되는 이유다. 그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또 다른 가족이 이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필자가 올해 초 제주지방법원 화해권고위원으로 들어갔던 재판이 생각난다.

가해자는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였고 피해자는 부모와 함께 출석했다. 피해자 측에서 처음에는 가해자에 대한 질책이 있었지만, 가해자의 할머니가 손자를 키우는 어려움에 대해 얘기하시던 중 눈물을 보이셨고 가해자 아이도 할머니와 함께 울며 진심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이후 오히려 피해자 측 부모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양보하며 가해자에 대한 선처만을 구하였다. 마지막에는 피해자의 아버지가 가해자에게 앞으로 길에서 만나면 인사하고 너가 더욱 잘 지내야 한다고 격려하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아이들도 위원들도 모두 눈물을 쏟았다.

사고를 친 아이에게, 왜 그랬니라고 질책하기 보다는 무슨 힘든 일이 있었니라고 다가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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