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참회
뒤늦은 참회
  • 제주신보
  • 승인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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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누구라도 살면서 땅에 묻고 싶은 과거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애써 위안하지만 어느 순간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밀려오는 회환에 잠 못 이루기도 하고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는 봉사나 희생 또는 가난한 주머니에서 돈 몇 푼을 꺼내 이웃을 돌보는 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요, 기쁘고 아름다운 순간에는 잊혀지지만 끝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고통이다.

빚을 갚는다는 심정보다는 용서받기 위한 마음으로 베풂과 선행에 나서보자. 인과응보는 내일이 아닌 오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인의 부탁은 먼 길 동행하자는 것이었다. 친구가 억울하고 분한 일을 겪었는데 현재 거동이 불편한 상태란다. 인연법이 있겠지 생각하고 가볍게 따라나섰는데 당사자는 누워서 손님을 맞아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렇게 된 지는 6년째였다.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믿음을 나눈 이의 배신으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었단다.

그는 이른 나이에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집을 지어서 팔기 시작해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승승장구했고 하는 일마다 이익을 남겼다. 위기가 찾아와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경찰서 한 번 안 가고 부를 축적했다. 공사가 중단된 상태의 아파트를 헐값에 인수해 보란듯이 분양을 마쳤으며 보유하고 있던 땅에 학교를 설립해 이사장이라는 번듯한 명예까지 달았다. 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돈을 아끼지 않아 호인 소리도 들었고 막강한 인맥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에 비할 정도로 속 편히 장사를 했다.

어느 날 아끼던 후배가 노후도 준비할 겸 배를 사서 선장을 두면 경제적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유혹했다. 태생이 바닷가라 관심을 두고 있던 터라 몇 번의 사전 답사를 통해 투자를 확정지었다. 둘만 알자고 하고 진행했으며 서로의 집까지 담보로 잡은 상태였다. 하지만 후배는 막상 계약을 하러 간다고 한 후 눈 앞에서 사라졌다.

전후 사정을 알아보니 여럿이 공모한 사기극이었고 실체 없는 허상이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했고 그날로 외국으로 도망갔단다. 충격으로 쓰러져 지금에 이르렀으며 출처를 밝히기 꺼려지는 자금이 포함돼 있어 신고조차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행인 것은 그런 일이 있기 전에 부인 앞으로 등기를 넘겨 화를 피한 학교재단이 남아있었다. 사정도 딱했지만 의리를 헌신짝처럼 버린 후배의 못된 심보를 혼내주기 위해 간절함을 담아 기도를 해주었다.

그리고 거의 반년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남미로 도피했던 자는 우연한 기회에 일약 부자가 되었다. 선배를 배신한 일이 양심에 찔렸지만 애써 묻어두고 지내던 중에 딸이 결혼한다고 남자를 데리고 왔다. 너무 형편 없는 사람이라 극구 반대를 했는데 집으로 찾아와 총을 발사했단다. 곧바로 경찰이 와 더 큰 사고를 막았지만 자신은 배에 총알을 맞아 병원에 실려갔다. 그런데 수술 도중 생시인지 꿈인지 그때의 장면이 떠오르더니 누워있는 선배의 모습이 확연히 떠올랐다. 치료를 마치고 나서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잘못을 빌었단다.

그는 밝게 웃으며 찾아와 당시 손해본 액수에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았고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