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해안산책로에서
한담해안산책로에서
  • 제주신보
  • 승인 202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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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순, 수필가

해안 길은 언제 걸어도 신이난다. 하얀 포말을 밀고 달려드는 파도 때문일까? 답답한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헤집어준다. 그 유명한 ‘한담해안산책로’를 찾았다. 현무암으로 둘러친 구불구불한 해안 길을 자박자박 걷노라니 태곳적 갯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제주 여행의 핫-플레이스(hot-place)로 떠오른 곳이지만 작은 해변에 지나지 않는다. 제주의 모든 해안도로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곳은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제주가 자랑하는 ‘숨은 비경 31’곳 중 하나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제주 해변의 진면모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규모가 크다고 유명세를 타는 건 아닌 듯하다.

산책로의 거리는 1.2km 정도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서 속살대는 바다의 해조음이 해변 산책에 낭만을 더해준다. 아름다운 풍경 덕에 여행자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관광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조망이 좋은 곳에는 벤치나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앉아 쉴 수 있는 시설까지 배려해 놓았으니 바다 경치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이곳에 앉아 석양에 물든 바다를 바라보며 탄성을 짓지 않을 수 있으랴 싶다.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나면 생활에 찌든 삶의 피로가 한꺼번에 날아갈 듯하다.

뭍으로 눈을 돌리면 모래 둔덕에 무리지어 피어난 분홍 해당화와 해풍에 난장이가 된 나무들이 다소곳이 서로 껴안고 서있다. 밀려드는 파도와 사랑의 밀어라도 주고받을 포즈다. 바다를 막아선 우람한 바위도 석양에 물든 구릿빛 위용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덤벼드는 물보라를 기분 좋게 받아넘긴다.

잠시 내리막길을 걷다보면 방문객의 발길을 사로잡는 수채화 같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카페, 레스토랑들이다. 젊은 세대의 취향과 감각에 맞추어 지어진 듯 가게들은 주위 경관과 잘 매치된다. 유명세는 외국으로까지 번진 듯 국내 관광객과 뒤섞여 걷는 외국인들도 꽤 된다. 산책로는 갑자기 사람들로 복작인다. 자세히 보니 단체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몰려온다.

해안 길을 따라 상가에 들어서니 길옆 가장자리에 쓰레기가 볼썽사납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내 치부를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 내 몸이 먼저 부끄럽단 반응이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오랜 기간 방치된 듯하다.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해안가에 쓰레기는 버리지 말고 가져가세요.” 안내판이 외려 무색하다. 이렇게 버려진 쓰레기들이 바다 경관은 물론 바다 생태계의 오염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지른 몰염치일 것이다. 관광지 환경 관리에 대한 이곳의 대처는 낙제 수준이다. 이곳뿐 아니라 사람이 많이 다니는 올레길 곳곳이 몰래 버린 쓰레기로 몸살이라고 한다. 동네 가까이에 쓰레기장이 설치되는 건 결사반대하면서도 자신이 사는 곳이 아니면 아무데나 몰래 버려도 되는 이율배반적인 우리네 삶. 아름다운 우리 자연 경관이 피폐해가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해안 절경 하나하나를 내 기억인자에 곱게 새겨 넣고 가려했는데, 이곳에서 무참히 퇴색돼버린다. “그대는 아는가? 이런 조그만 허점 하나가 제주의 이미지를 흐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