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知性)과 지식(知識)
지성(知性)과 지식(知識)
  • 제주신보
  • 승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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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섭, 시인·수필가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지성인의 책임에 대해 ‘인텔리’는 사회구조의 지도구성인 까닭에 사회 참여에 앞장설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말하며 행동의 적극성을 강조하면서도 오늘날 사회구조층인 인텔리들의 비행동을 탓하기도 한다.

사실 인텔리들은 지성으로나 인격으로나 사회지도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참된 것을 알면서도 몸소 앞장설 용기를 가지지 못하기도 한다. 지(知)와 행(行)의 일치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지는 모르지만, 원래 인텔리겐치아(intelligentsia)는 정치적인 것보다 그 본질적인 바탕의 펼침으로 정신문화원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말하듯 지는 정(正)이며 이 정은 도(道)라 했는데 옳은 생각과 바른 것을 알면서 행하는 것은 정이라 하여 이를 밀고 나가는 건 도일 것이다. 야스퍼스의 인델리겐치아론(論)은 지성을 가진 사람이 생각에 그치고 정에 대하여 과감성이 희박하다는 뜻이며, 이는 사회구조와 문화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생각과 행의 일치를 못하는 어떠한 결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안다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이리저리 이모저모 따지다가 식어가기 쉬운 것 같다.

그것은 아는 것이다. 아는 것이 지식이 아니라 지성이며 양식과 인격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할 때 지는 양식이며, 정일 것이니 우리가 보통 통념적로 말하는 지식의 다른 것일 것이다.

지성인은 아는 것만큼 선용해야 한다. 그래서 말이 많고 이론이 많다. 사실 지성인은 다루기가 힘든 존재이다. 철저한 개인주의는 자기만을 위한 공동광장을 마련하기 때문에 자기가 잘살 수 있는 길은 남을 잘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좀 더 나은, 좀 더 훌륭한 사회를 우리는 만들 책임이 있는 것이다. 아는 것을 자랑하기보다 옳게 작용시켜야 한다. 지성 그 자체는 관념의 농락에서 손끝이나 혀끝의 이야기가 아니다. 근자 지성의 뿌리가 이기적인 여건에서 방향이 모호한 점이 있다. 그것을 안다는 것이 오히려 알지 못하는 무례한 점이 보다 더 나쁘게 역설을 낳은 일이 많다는 것이다.

먼저 말한 바와 같이 알려면 바로 알아야 하고 바로 알았으면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이 지성인의 책임이며 의무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한다든가 알맞을 때도 따져봐서 자기에게 불리하다는 극히 통속적인 실리 때문에 세상을 뒤집어놓고 이것을 합리화하기에 머리를 쓰는 지성인을 본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지성인은 우선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성인인척 하는 얼마나 정신적 사기꾼들이 날뛰고 있는가? 자신을 겸허하게 알 필요가 있다. 자신을 알면 인생을 알고 원칙의 방향이 선다.

어떤 분은 지는 칼날 같아 잘못 쓰면 오히려 해가 된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무지는 무모한 짓을 해서 일을 그릇 치지만 지성은 올바르게 쓰지 않으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지역을 대표해서 선출된 국사를 논의하는 국회의원이나 공무원, 교육자, 회사원들도 모두가 지성인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지성인의 론은 아는 것을 지도하고 봉사하는 직업적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지(知) 그 자체는 권력이 아니며 불합리를 합리화하는 것이며 오직 정의와 도를 실이 삼위일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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