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이별
아쉬운 이별
  • 제주신보
  • 승인 202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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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종교 지도자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는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이웃을 돌보는 착한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군대에 막 입소한 신병 시절에는 숙달된 조교가 모든 행동을 보여주고 따라 하라고 명령한다. 그 후 반복된 훈련으로 완성을 향해가듯 세상 이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이대로가 아닌 거듭나야 한다는 간절함을 가져보자. 거듭 밝히지만 죽음은 노랫말 가사처럼 다음을 기약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보고 너무 무의미하지 않았나 하는 고민에 빠져보자.

누구에게나 얼굴이 익히 알려진 지인은 다방면으로 재주가 있어 학창시절부터 주목을 받았다. 내로라하는 수재 중에서도 으뜸이었고 생각주머니에서 나오는 지혜는 감탄스러웠다. 일찍이 사업을 한다고 외국을 드나들더니 놀라운 성과를 내었다. 순풍에 돛이 달린 듯 하는 일마다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언제부턴지 초심이 사라지고 우쭐한 교만이 눈과 귀를 막아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섭섭하다는 원망과 미움을 남겼다. 그리고는 새로운 영역에 무모한 승부를 걸었는데 허망한 사흘 잔치로 끝났다.

빈자로 전락했지만 그간의 생활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화려함이 만든 초라함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야 했지만 쉬운 방법을 택하였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투자자들을 유치해 틀림없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빚을 얻었다. 하지만 이미 회복이 불가능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조차 안 됐지만 안심하라는 대답이 입에 붙었다. 용감하지 못했던 그는 뒤로 숨거나 연락을 끊어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당연시하게 됐고 변명으로 일관했다. 잠시 편하자고 했던 행동이 독이 되었다. 부정을 당연시 하는 것은 자신에게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그는 이내 심각한 병을 얻었다.

남과 심각하게 다투거나 기분이 극히 나쁠 때 기운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계속되는 이런 현상은 죽고 싶다는 유서와 동일하다. 그는 그 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더니 끝내 슬픈 소식을 전하였다.

숙제를 마치지 못했기에 다음 생에도 이와 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 그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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