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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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현 수필가

 

부산의 끝자락에 태종대가 있다. 그 바닷가에서 누나는 해산물을 채취하며 생활하고 있다. 구부정하게 허리가 휘어진 몸에 수경을 끼고 해산물을 채취하는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지금도 먼 바다를 바라보며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남편과 막내아들을 그리워한다.

누나는 칠남매 중 셋째 딸이다. 한문을 배우신 엄한 아버님과 부지런한 어머님 자녀로서 형제들 중 제일 부지런 하였다. 새벽에 어머님과 같이 일어나서 부엌일을 도왔다. 밭에 일을 하러 갈 때에도 모든 도구들을 챙기고 앞장서곤 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처럼 어른들로부터 부자로 잘 살리라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님을 따라 바다를 들락거리던 누나는 소녀 때부터 해녀가 되었다. 성년이 되면서 상군해녀가 되었다.

60년대 제주는 토지가 척박하여 여자들은 농사도 하고 물기가 되면 바다에 가서 해산물을 채취하며 생활을 도왔다. 해녀들은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바다 속에 들어갔다가 숨이 차서 물 밖으로 나오면서 호오하며 휘파람소리 같은 숨비소리를 낸다. 그 여운에는 어쩌면 삶이 한이 서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나는 어머님과 함께 소라, 전복, 문어등 해산물을 채취하여 오일장에 가서 공산품인 바늘, , 고무신 등과 물물교환을 하였다. 그 당시 미역은 가정의 중요한 소득원이 되었다. 마을 어촌계에서는 미역이 자랄 때까지 금지하였다가 일정한 날을 정해서 미역 해제의 날을 정하여 채취하도록 아였다. 그 날은 온 가족이 함께하여 해녀들이 채취한 미역을 뭍으로 끌어올리고, 소와 마차로 집까지 운반하였다.

초등학교 때 가족을 따라 미역을 채취하는 바닷가로 따라 나섰다. 해녀들이 미역을 채취할 때는 태왁을 물위에 띄워놓고 밑에 달린 망사에 미역을 담고 태왁에 의지하여 뭍으로 돌아왔다. 마을 해녀들과 미역을 채취하러 간 누나가 다른 해녀들은 전부 돌아 왔는데에도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따금씩 숨비소리만 들리고 가족들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먼저 뭍으로 나와서 불을 쬐던 둘째 누나가 바닷가로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 후에 셋째 누나의 망사를 둘이서 같이 끌고 뭍에 도착하였다. 셋째누나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고, 가족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였다.

저녁 식탁에 커다란 문어가 올라 왔다. 셋째누나의 말에 의하면 미역을 채취하는데 문어가 눈에 띄어서 문어를 잡기위해 바다 속 깊은 언덕까지 따라갔다는 것이다. 문어가 너무 커서 힘들게 잡았다. 누나가 힘들게 잡아온 문어를 편안히 식탁 앞에서 먹기가 민망스러웠다.

그날 밤에 누나는 바다 속의 세계에 관해 이야기 해 주었다. 바다 속에도 육지와 같은 언덕과 모래밭이 있고, 강물처럼 물이 흐름이 있다. 블랙홀과 같은 물이 급속히 휩쓸려가는 숨골도 있다. 그 속에 발을 잘못 디디면 빠져 나오기가 힘이 든다고 하였다. 큰 고기를 따라 바다풀이 우거진 언덕에 잘못 휘말리면 빠져 나오기가 힘들다고 하였다. 바다 속에는 무서움과 신비스러운 세계가 있는 것 같았다.

셋째누나는 둘째 누나와 함께 부산으로 갔다. 해녀로서의 긍지와 육지에 대한 동경심을 버릴 수가 없었던가 보다. 셋째누나는 부산 동삼동에서 해녀 생활을 하면서 그 동네 선주였던 매형과 결혼을 하였다. 이남 일녀를 낳고 오손도손 즐거운 생활을 하였다. 조물주는 이따금 행복한 가정을 시련에 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술을 좋아하던 매형이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큰아들이 장년이 되면서 성깔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여러 직장을 옮겨 다녔고, 장사를 하며 불규칙적인 삶을 살며 누나를 재정적으로 힘들게 하였다. 어려움은 겹쳐서 온다고 하였던가. 둘째아들마저 간암으로 돌아가서 그 손주들까지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자신보다 먼저 떠나간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까 이따금 멍하니 지평선을 바라보며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주어진 길이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끝없는 가시덩굴 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삶도 있는 것 같다.

누나는 오늘도 태종대 앞 바닷가에서 손주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숨비소리를 내쉬며 해산물을 채취한다. 해녀로서의 두통에 시달리는 삶을 내색하지 않고 호오하며 긴 숨을 내쉬며 허탈한 미소를 짓겠지. 언젠가 지평선 위에 태양은 힘차게 떠오르라는 믿음을 갖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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