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그리고 봉쇄封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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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앞만 보고 내달리는 사회에서는 소소한 것들이 보일 리가 없다. 나도 그랬다.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듯싶다. 일상을 잠시 멈추고 사유思惟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내포한 시이다.

난 지금 스스로 자가격리 중이다. 면도를 언제 했는지도 모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타심利他心의 발로發露라고나 할까? 감염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게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가져다준 내 일상은 잊었던 것들을 소환하고 소소한 것들과 대화하는 지금이 그 꽃인지도 모른다. 일정표가 모두 삭제된 지금 일상이 나를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그동안 독서와 창작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진정으로 몰입된 독서와 글쓰기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듯한 감정으로 나를 울렁이게 한다. 고독에서 찾는 즐거움 속에 소중한 것들이 숨어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코로나19 확산은 중국이 우한武漢시를 봉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지구촌 팬데믹(pandemic)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고나 할까?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중국에 대한 강경조치를 보이는 듯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부는 미온적이었다. 봉쇄하고 차단遮斷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잠시 멈춤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동안 봉쇄封鎖라는 단어를 두고 말이 많았다. 집권당 대변인도 사퇴하게만들고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해명해야 했던 봉쇄라는 단어는 결국 수면 아래로 침잠하고 말았다.

단어 하나에 이렇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특정지역을 비하하고 명예를 훼손한다는 논리를 앞세운 정치인들이 총선을 의식해 쏟아낸 발언들은 아니었을까?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시민사회단체들도 봉쇄라는 단어 앞에선 가타부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온 세상이 감염되고 있지만 치유와 정화의 바이러스에 온 세상이 감염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기利己보다 이타심으로 생활한다면 행복 바이러스는 무한정 배양되기에 하는 말이다.

코로나19는 앞만 보고 내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추라는 신의 계시啓示는 아닐까? 인간들이 잠시 멈춤을 한 사이 봄은 이미 우리 곁에 꽃등을 달아 놓았다. 자연은 멈춤이 없지만 이 봄 우린 잠시 멈추고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과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곧 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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