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감염병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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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논설위원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가장 오래되고 강한 인간의 정서는 공포(恐怖)다.”라고. 공포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감정을 말하는데, 라틴어 앙구스투스(angustus)라는 말에서 유래하는 ‘압박 또는 구속성’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에서 느끼는 공포는 매우 다양하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번뇌와 고통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화택(火宅)’이라 하였고, 인간은 고해(苦海)의 바다를 건너는 삶을 산다고 여겼다.

인간의 공포 중에서 특히 감염병에 대한 공포는 개인의 신체적 질환과는 달리 매우 폭넓게 사회를 위협한다.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재난의 공포로 몰아넣으면서 각국에서는 백신 개발을 위해 온힘을 쏟고 있고, 우리나라도 ‘국가 바이러스·감염병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감염병은 문학과 예술작품에서도 다루어진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페스트 대유행 시대에 탄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1348년에 창궐한 페스트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당시 피렌체를 휩쓴 페스트를 피해 교외 별장에 모인 남녀 10명이 10일간 한 사람이 한 가지씩 풀어놓은 이야기 100편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삶은 언제라도 쉽게 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그려진다.

1340년 경, 화가 부오나미코 부팔마꼬의 프레스코 작품 <죽음의 승리>는 유럽에 전염병이 만연하기 전에 그려진 것이지만, 전염병과 전쟁 등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한 14세기 유럽의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당시 페스트가 휩쓸고 간 곳은 인구의 절반 가까이의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감염병은 곧 죽음을 부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죽음의 승리’는 당시 서양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되기도 했다.

1562년 네덜란드 화가 피테르 브뤼헐이 그린 <죽음의 승리> 역시 중세에 만연했던 페스트에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죽음은 삶과 싸워 언제나 승리하며,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1630년 다시 전염병이 번지자 니콜라 푸생은 작품 <아슈도드에 창궐한 전염병>을 통해 질병에 시달리는 육체, 불안해하는 시민의 얼굴 등 당시 이탈리아의 충격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섬뜩한 이미지를 마카브르라고 한다. 이 화풍은 현세의 허무함을 일깨우기 위해 해골과 모래시계를 화면에 그려 넣는다. 17세기에 네덜란드에서는 마카브르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니타스 정물화가 발달했는데 중세 말 페스트, 종교 전쟁 때문에 탄생한 것이다. 이 역시 해골, 회중시계, 지구의, 책, 칼, 잘 익은 과일, 악기, 먹던 빵 등을 그렸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방금 전까지 악기를 연주하다가, 또는 책을 보다가 혹은 식사를 하다가 빈자리를 남긴 채 사라진 인간의 덧없는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흐름을 이어주는 말이 바로 ‘메멘토 모리-죽음을 잊지 마라’는 경구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며 인간의 정서를 드러낸다. 감염병을 예술로 표현하는 것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공포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인간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명작이 탄생하는데 영감이 되었던 감염병 시대의 예술작품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죽음을 통해 삶의 유한함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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