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하면 살려준다더니…토벌대, 청년 96명 총살”
“자수하면 살려준다더니…토벌대, 청년 96명 총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4.3 72주년 기획) '박성내 사건' 참혹...평화와 인권 소중함 보여주는 현장
1948년 12월 자수를 한 조천면 관내 청년 96명을 총살 후 휘발유를 뿌려 시신을 태운 제주시 아라동 ‘박성내’ 하천 전경.
1948년 12월 자수를 한 조천면 관내 청년 96명을 총살 후 휘발유를 뿌려 시신을 태운 제주시 아라동 ‘박성내’ 하천 전경.

제주도민들은 제주4·3사건의 비극과 아픔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4·3특별법 개정안은 2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본지는 72주년 4·3희생자추념식을 앞두고 4·3의 역사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기획 보도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이 최근 발간한 4·3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 장소에서 민간인 50명 이상이 희생된 집단 학살사건은 26건에 이른다.

토벌대의 전과 올리기는 광기어린 학살로 이어졌다. 토벌대가 청년들에게 자수를 유도한 뒤 총살에 이어 시신을 불태워 버린 ‘박성내 사건’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유족들에게 안겨줬다.

1948년 12월, 함덕리에 주둔한 9연대는 제주읍 조천면 주민들에게 자수를 권고했다.

광복 직후 인민위원회에서 활동한 사람, 1947년 경찰의 3·1절 발포사건에 항의해 시위를 한 자, 무장대에 식량을 준 이들은 죄의 유·무를 떠나 자수를 하면 살려주겠다고 선전했다.

오현초급중학교(현 오현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송태우씨(당시 19세)는 부식을 가지러 고향 조천리에 갔다가 ‘조천면 자수 공작’에 휘말렸다.

주위에서는 “공부하는 학생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 자수만 하면 살려준다니 가서 잘 얘기하면 된다”고 했다.

송태우씨를 비롯해 조천·와흘·신촌·신흥·교래리 등 조천면 관내 청년 100여 명은 군 주둔지인 함덕국민학교에 가서 자수를 했다. 군인들은 취조를 하지 않았고, 수감생활을 자유로웠다.

그해 12월 21일 토벌대는 무장대 토벌작전에 참여하면 양민증을 주고 풀어주겠다며 청년들을 군용트럭에 태운 후 제주농업학교로 데려갔다.

박성내 사건 유족 송태휘씨.
박성내 사건 유족 송태휘씨.

그런데 군인들은 이곳에서 5명씩 철사줄로 서로 결박해 제주시 아라동 ‘박성내’ 하천(제주아라중 인근)으로 끌고 갔다.

군인들은 냇가에 5명씩 청년을 서게 한 후 기관총을 난사했다. 시신은 포개지듯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당시 청년들은 공포에 질리고 죽음을 직감한 나머지 살려달라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군인들은 총소리로 인해 무장대가 올지 모른다며, 확인 사살 차 시신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

이 총살 현장에서 2명은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총알이 급소를 피해간 이들은 낭떠러지로 떨어진 시신 속에서 죽은 척했다가 살아남았다.

토벌대의 약속과 달리 자수를 한 청년 96명은 박성내로 끌려가 한날 한시에 억울한 희생을 당했다.

고(故) 송태우씨의 동생 송태휘씨(87·화북동)는 “불에 탄 팔목과 몸통마다 온통 철사줄로 감겨있었고, 누가 누구인지 얼굴의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었다”며 시신을 수습하러 갈 당시를 회고했다.

송씨는 “형님은 당시 결혼 예물로 입었던 파란색 양복과 빨간색 구두를 신고 있어서 타다 남은 시신 속에서도 용케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는데 죄를 고백하라고 하고, 자수를 하면 살려준다고 했다가 죽여 버리는 게 세상천지에 어디에 있느냐”며 한맺힌 응어리를 토해냈다.

집단 학살은 도내 곳곳에서 자행됐다. ▲북촌리 주민 학살(299명) ▲함덕백사장·서우봉 학살터(281명) ▲정방폭포 학살터(235명) ▲표선백사장 학살터(234명) ▲성산포 터진목 학살터(213명) ▲도두리 주민 학살(183명) 등이 대표적이다.

4·3평화재단 관계자는 “1948년 11월부터 토벌대가 중산간마을을 방화하는 초토화작전과 함께 가혹한 진압에 나섰다”며 “무장대에 의해 주둔지나 군용트럭이 습격을 당하면 토벌대는 즉각 보복에 나서면서 자수자와 도피자 가족 등은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