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은 고통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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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코로나19의 창궐로 온 세계가 아비규환이다. 인간의 고통을 위로하러 슬며시 봄이 다가왔을까. 햇볕 따사롭다. 뜰에는 색색의 히아신스가 나들이하고 후레지아도 노란 향으로 가슴 부풀린다. 박태기나무가 가지마다 진홍 봉오리를 터뜨리고 명자꽃 분재도 희고 붉은 웃음을 전한다. 꽃들을 눈앞에 하고 슬퍼지다니, 이 어인 시절인가.

누군들 생로병사의 길을 피할 수 있으랴만, 건강하게 살다 가고 싶은 건 모두의 소망일 테다. 안타깝게도 나는 건강 체질이 못 되어 병원을 들락거린다.

지난 2월 중순에 접어들 때였다. 배가 탈이 나기 시작했다. 복통이 일면서 흰죽도 소화하지 못해 설사와 구토로 시달렸다. 동네의 내과의원에서 처방 약을 먹고 링거주사까지 맞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2월 초에 위와 장 내시경 검사를 받지 않았더라면 위암이나 대장암이 떠올랐을 것이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별 이상이 없다기에 안도했었다.

종합병원으로 가라는 의사의 권유에 덜컥 겁이 났다. 서둘러 소화기내과를 찾아갔다. 먼저 체온을 재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열이 나고 폐렴 증상이 있다며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했다. 텐트가 설치된 검사소에서 대여섯 사람을 기다려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독실에 격리되었다. 손등에 주삿바늘이 꽂히고 링거대에 알 수 없는 링거병과 링거팩들이 매달렸다.

바이러스에 감염될 만한 상황은 짚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자 예상대로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래도 장염과 폐렴이 문제였다. 하루 더 지나서 4인실로 자리를 옮겼다. 순한 양처럼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복통은 이내 사라졌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란 말이 떠올랐다. 전문가의 몫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확실한 답이다.

병상에 누워 지내려니 잡다한 생각들이 떠다녔다. 장염은 그렇다 치고 폐렴의 원인은 무엇일까. 골초 굴레를 벗은 지가 30년이 넘었고 유사증상도 없었지 않은가. 목이 아리고 무언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역류성식도염이 아니라 폐렴 때문이었을까. 되짚어보니 난방 보일러가 없는 서실에서 가스히터 켜 놓고 겨우내 읽고 쓰고 한 게 문제인 것 같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시선을 보냈다. 마스크를 사려고 길게 줄 선 모습이 들어온다. 그만 울컥했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래도 3월이 되기 전이라 확진자와 사망자를 헤아리며 곧 바이러스가 제압되길 기원했다. 며칠 더 입원하다 처방전을 받고 퇴원할 수 있었다.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

유수 같은 세월, 다시 한 달이 지나간다. 코로나19가 어느 나라에나 패닉 상태를 일으켰다. 180 개 국가가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며 빗장을 채우고 있다. 누가 이를 ‘방역능력 없는 국가의 투박한 조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사망자 수도 150명을 넘어섰다. 초창기에 입국을 제한하며 감염원을 차단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탁월하고 열성적인 의료진의 헌신으로 진즉 재난의 큰불은 껐을지도 모른다. 국민의 생명에 앞설 정책은 없다. 이제라도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

건강관리가 개인의 몫이듯, 나라의 재난도 우리가 대처할 몫이다. 위생관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며 이 위기에서 슬기롭게 벗어났으면 한다. 생존은 고통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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