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힘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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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자 수필가

문득 삶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그가 떠오르는 것은 나와는 조금 대비적인 삶을 살았다는 느낌 때문일까. 난 그가 적어도 갠지스 강 정도는 혼자서 떠돌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나의 독서는 오빠의 서재에서 이루어졌는데 희랍인 조르바 등 유랑을 꿈꾸기 좋은 책들이 많았다. 그가 읽던 책을 내가 읽었다.

같은 물이어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던가. 그는 수 십년 수학교사로 재직하다 교장으로 퇴임을 했고, 인간사 풍파에도 좀처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난 이혼했고 직장도 중간에 관뒀다. 물론 다르다는 것을 안다. 삶이란 것은 저울질 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니까.

별거를 고민할 무렵에 아버지가 꿈에 등장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덤블도어처럼 수염이 길었는데 마법사처럼 지팡이를 치켜서 천장 귀퉁이를 향해 불을 뿜었다. 나를 순순히 보내주지 않으면 다음엔 중앙을 태워버리겠다고 했다. 집 밖으로 나올 때까지 아버지는 입구를 지켰고 내가 나오는 것을 확인하자 말없이 사라졌다. 꿈이나마 난 아버지에게 감동했다. 오랜세월 지켜만 보더니 드디어 행동해주시는구나 싶었다. 물론 이것도 나만의 해석이리라. 꿈이란 것도 저울질 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니까.

막내아들이 성년이 되던 해 난 시댁 구성원에서 분리가 되었다. 몇 년 동안 아이들의 마음고생이 컸다. 언젠가 면접에 필요한 아들의 양복을 사주기 위해 상경한 적이 있다. 내친 김에 아들이 사는 숙소에 가보았다. 책상에는 취준생의 흔적들이 역력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와 찍은 사진이 차례대로 붙여져 있었다. 아들은 그 사진들을 보면서 힘을 낸 것 같았다.

내 사진은 없었다. 연꽃을 본 마하가섭이 그저 미소를 지은 것처럼 그 풍경에서 나는 장성한 아들을 보았다. 내게는 막내이지만 집안에서는 장손인 아들의 어깨를 보았다.

아들의 모습에서 가끔 둘째 오빠를 떠올린다. 내가 아버지를 독재자라고 비방할 때도 오빠는 아버지를 옹호했었다. 그가 단호한 어조로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우리를 키웠다고 말했을 때 난 무척 놀랐다. 왜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와 오빠가 기억하는 아버지가 다른 것일까.

시댁에서 분리되어 나온 후에 내 삶은 녹록치 않았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는 격이구나 탄식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 중에도 명절 때가 되면 시댁에선 나에게 먹을 것을 보냈다. 보자기와 종이상자를 열면 떡과 과일, 산적 등 명절음식들이 들어있었다. 가슴에 미묘하게 스치는 통증 때문에 한동안 음식 맛을 못 느꼈다. 당일바리 옥돔 맛이 제대로 느껴진 것은 그 후에도 몇 년이 지나서였다. 인연을 접고 떠난 며느리에게 사심 없이 온정을 보내는 여장부의 배포를 지닌 분, 오랫동안 난 그분의 조력자였다. 시대가 변해 많은 이들이 외부에서 피로연을 하는 시절에도 칠남매를 제주 식으로 사흘잔치를 했고, 시할머니의 장례도 전통적으로 집에서 행해졌다.

이른바 디지털시대가 되었고 많은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세 번째 작업을 구상하던 즈음에 중산간의 세시풍속과 노동문화를 채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극성에 H선생이 수시로 사진을 찍느라 고생했고 민속학자 K박사도 자료채집을 위해 집에 머물렀었다. 상주복을 입은 맏며느리가 친척들의 눈초리를 피해 현장을 스케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분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그 책은 출간할 기약이 없어졌다.

애들이 앞가림을 하게 되자 별렀던 명예퇴직을 했다. 퇴직 후의 여유자적도 바이러스가 만연되자 일시에 중단되었다. 예전 직장으로 복귀하여 코로나19’로 바쁜 일손을 거들고 있다.

얼마 전 휴가를 받고 내려온 아들이 예고도 없이 보건소에 나타났다. 잠시 후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에서 까똑까똑 소리가 났다. 단톡방에는 일하는 내 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올라왔다. 사진 밑에는 국가적 재난에 나선 영웅이라는 제목이 달렸고 단톡방에서 난 코로나19에 맞선 투사가 되었다. 물론 장난기가 섞였지만 내가 하는 일에 비해선 너무도 거한 응원이었다. ..., 몸이 불편하셨던 아버지를 영웅처럼 뜨겁게 옹호했던 오빠의 마음도 그랬으리라.

난 운전대를 잡으면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다. 자신을 변호하며 부끄러움이 끼어들 새 없이 차안에서 떠들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부끄러움을 허용하기 시작한다. 지난 날을 생각하면 때론 얼굴이 붉어지고 가끔 참담하지만, 부끄러움에는 삶을 성찰할 수 있는 동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새로운 힘의 발견이었다.

난 이제 부끄러워 할 수 있다. 부끄러워하리라.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저 하늘 아래 어느 별이 반짝여왔는지...” 이 시 구절처럼 난 이제 혼자 기를 쓰며 스스로를 옹호할 만큼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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