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희망을 품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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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진 수필가

반찬가게에 들러 파김치를 사며 입맛을 다신다. 밥상 위에서 젓가락이 팽하니 돌아서는 음식 중 하나가 파김치였는데. 어찌 그 쌉쌀한 맛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냐고 묻던 파김치 애호가에게 ‘그냥 씁쓰름한 맛일 뿐이다.’라고 시큰둥하게 답하던 나였는데.

고집은 가슴이 뭉클한 순간 무너진다. 어머니가 담아 준 파김치. 부모님 두 분이 볕이 드는 마당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파 다듬는 모습을 본 뒤, 그것은 음식이 아니었다. 집에 갈 적마다 이곳저곳 살피며 손에 쥐어 보낼 것을 찾는, 늙은 부모가 자식에게 줄 게 있어 다행인 환한 미소 속에 숨긴 안도의 한숨이었다. 차츰차츰 그 맛에 길들여졌다.

라면도 그러했다. 고집스레 면보다 밥이었는데 밥보다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과 살며 한 가닥 한 가닥 거들다 어느새 졸깃한 면발을 사랑하게 되었다. 비 오는 날이면 뇌가 기억하고 있는 라면 냄새. 차마 떨칠 수 없어 부엌으로 향한다.

짠짜라 짜라짜라 짠짠짠…. 라면에다 파김치를 얹으며 요즘 대세인 트로트를 흥얼거린다. 남이 가진 흥을 부러워만 하던 내가 어깨를 들썩인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부르는 뽕짝쯤으로 여기다가 ‘내일은 미스터트롯’이라는 TV프로를 통해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가사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꺾기의 매력.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불안감과 집에서 콕 박혀 생활하는, 이른바 ‘집콕’에서 오는 갑갑함을 한순간 날려 보낼 수 있는 청량음료 같은 쨍함. 트로트는 어느 한 세대에 속한 노래가 아닌 모두가 공감하며 따라 부를 수 있는, 흥과 한이 공존하는 한국적인 장르였다. 만약 파김치와 라면 그리고 트로트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소소한 일상에서 이토록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까.

삶 속에 묻어 있는 타성을 깨지 않으면 점차 고집스러워져 습관으로 굳어 간다.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만을 지각한다. 뇌가 최대한 적게 생각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손쉬운 선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때로는 버리고픈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인이 정말로 원하는 것과 반대로 해 보는 것도 유익한 방법이란다. 타성을 지배하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의지이기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혹, 내가 가진 한 표에 어떤 희망을 품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학연·지연·혈연이라는 타성에서 자유로운지 들여다볼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연고주의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개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정책이 있어도 맥을 못 추고 있다. 그래서일까, 입후보자들은 입으로는 공정선거를 외치지만 정책 대신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알고 보면 괸당’이라는 연줄을 찾아 나선다. 매 선거 때마다 표를 구하는 모습은 도돌이표처럼 답습되고 있다.

변화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펼치고 있는 사회적 거리 두기처럼, 잠시 인맥에서 떨어져 내가 찍고자 한 후보가 그 자리에 앉을 만한 깜냥인지 헤아려 봐야 한다. 합리적인 선택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작은 날갯짓이 될 수 있다. 나의 한 표에 희망을 품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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