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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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 수필가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바람이 잠든 허공을 수채화처럼 수놓고 있다, 봄비가. 새색시 걸음처럼 소리 없이 살포시 내리니 전혀 모를 수밖에. 비와 나 사이엔 아무런 거리감 없이 한 장의 젖은 유리창뿐일진대 바라보는 마음 또한 빗방울이 묻어나는 듯 묵연(默然)해진다. 그렇게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야릇한 허전함이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아마도 글로벌화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리라.

뉴스 특보, 속보! 예년 같으면 봄맞이 축제 소식이 만연하고, 더욱이 요즘 같은 선거철이면 유세 장면이나 각종 여론 조사 결과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일 터인데, 누적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 그리고 지구촌의 코로나 19 상황이 연일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진정 난감하네!’라는 탄식과 한숨이 절로 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가 일상어가 되어버린 이즈음 우리 사회의 모습이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반가운 만남의 순간에도 선뜻 손 내밀어 악수하기가 껄끄러워진다. 식당에서 식사 도중 사레에 걸려 재채기를 했다가는 쏟아지는 눈총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다. 마스크가 생활필수품이 되고 개인위생 관리가 철저해진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만큼 인정도 희석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앞선다.

게다가 이 소리 없는 괴질(怪疾)이 소중한 생명만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경제마저 파탄 낼 지경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안 그래도 팍팍한 서민들의 삶이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마냥 점점 생동감을 잃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딱 제격이다.

극한 어려움에 처하면 민낯이 드러나는 것일까? 자가 격리 지침을 어기고 제멋대로 나다니는 사람들, 마스크 품귀 현상을 빌미로 사익 편취에 골몰하는 사람들, 물론 극히 일부겠지만 참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난세가 영웅을 낳는다.”고 하지 않는가. 감염의 두려움을 묻어두고 성심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들,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질병 확산 방지에 전념하는 관계 당국자들, 손수 마스크를 제작해 봄비처럼 소리 없이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 사재기를 하지 않는 대다수 국민들……. 그래서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이길 수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한국인에겐 은근과 끈기의 저력이 있다. 기필코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라 확신하면서 가만히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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