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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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눈 닿는 곳, 발 딛는 곳마다 자연은 수많은 것들을 아낌없이 건네고 있다. 산과 들 초록, 그 안으로 고운 색들도 불러들였다. 계절에 소환된 꽃들은 저마다의 색깔과 크기, 모양, 혹은 쓰임으로 다가오고 더러는 향기를 쏟아내며 오가는 이 발길을 묶기도 한다.

정중앙으로 바라다 보이는 한라산은 산자락, 골과 골로 이어지는 명암이 어찌나 청명한지 그 깊이라도 그려낼 것 같다. 벚꽃 만발한 가로수 길은 제주대학까지 긴 거리를 잇고 있다. 양쪽 길 따라 계절로 핀 꽃길은 잘 다듬어진 공원의 한 구간을 옮겨놓은 듯 하늘색과 대비되며 펼쳐진 풍광들이 그지없이 곱다. 봄바람에 꽃잎 화르르 떨군 자리엔 파릇한 이파리를 내거느라 계절은 한창 바쁘다.

이런 날 친구라도 불러내어 길동무, 말동무하며 나란한 모습으로 이 봄이 휘도록 가득 핀 계절 속 꽃을 만끽하면 좋으련만 무슨 조화 속일까. 여느 때 같으면 꽃구경으로 오가는 사람마다 흥으로 넘실댔을 도로다. 느닷없이 찾아온 불청객 코로나19는 지루하게 봄으로 다가온 고운 계절마저 야속하게 만든다.

어느 날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란 낯선 말이 짧은 기간 반복하며 수없이 듣다 보니 식상해져 일상어가 된 느낌이다. 그뿐일까. 재택근무, 원격근무, 시차 출퇴근제, 점심시간 시차운용, 화상회의 등 어쩌다 한번 들으나마나 할 용어들이 일상을 파고들어 직장인들 사이에서 보편화된 근무 형태가 되어버렸다. 모두 코로나19 전파를 차단하고, 사람 사이 비말로 전파되는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들이다.

어색했던 일들이 당연시되기도 한다.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출근하지 말고, 근무 중 아파도 참고 견뎌야 했던 일이 이젠 이상증상을 보이면 즉시 퇴근해야 하는 것이 코로나19 기본수칙이다. 나로 인하여 타인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져온 변화다.

여기저기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로 바쁘다. 우리 제주만 해도 녹산로로 이어지는 가시리는 초입에서 얼추 10㎞ 거리가 유채꽃과 벚꽃이 어우러져 봄철이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알려질 만큼 유명한 곳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모여드는 상춘객, 즉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화사하게 핀 유채꽃밭을 조기에 갈아엎었다는 소식이다.

신학기지만 학교에 못 가 온라인 교육을 받는다는 학생, 아이만 두고 출근하자니 걱정인 학부모, 언제 열지 모른 채 휴관된 다중시설 이용자, 복지관이나 노인당이 주 놀이터고 쉼터인데 갈 곳 없다는 부모님들, 이러저러한 모임과 여행을 취소나 연기, 사람 간 2m 유지 등 일상에서 느끼는 큰 불편들인 것이다.

모두 지치고 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또 2주 연장 발표했다. 많은 분야에서 일상이라는 바퀴가 제대로 구르지 못한 채 장기화되다 보니 힘들다는 말이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위기라는 말도 쓴다. 조금만 더 힘을 모아 개개인이 코로나19 생활수칙을 잘 지켜 안전에 대비할 때, 그것은 전체가 되고 나아가 원하는 결과를 속히 얻으리라 본다.

작은 구멍으로 둑 무너진다는 말처럼, 비록 사소해 보이나 서로는 하나라는 연대의식을 가져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동참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절실히 요구된다. 다 같이 힘든 때다. 그날이 그날이라며 무료해 하던 그 일상이 요즘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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